초록(3줄요약)
본 연구에서는 파이널판타지14©에 등장하는 식품, 현인빵을 재현하여 그 맛과 영양성분을 평가하고 같은 분류의 식품들과 비교 분석하였으며 함께 등장하는 식품인 현인 샌드위치 또한 재현하여 맛과 영양을 평가하였다. 분석 결과 현인빵은 생선 향미가 두드러지는,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맛과 식감을 가졌으나 영양학적으로 다른 빵에 비하여 우월하였으며 현인 샌드위치는 현인빵의 단점을 보완하는 음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I. 서론
여러분 모두가 알다시피 빵은 완전식품입니다.
빵은 그 자체로 완벽하므로 영양가를 개량하겠느니 더 나은 대체재를 만들겠느니 하는 시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하늘 끝까지 더 즐거운 맛을 추구하는 모험가 정신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지만, 단백질 빵이니 영양강화 빵이니, 그런 사도 같은 행위 저는 결사반대입니다. 따라서 데브로이 선배님은 샬레이안이라는 죄악의 국가에서 자연발생한 혁명가이며 저 또한 동지의 길을 뒤이어 걷고자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 아닐까요? 세상에 나쁜 빵은 없습니다. 바게트도 브리오슈도 피타도 다 맛의 생태계에서 고유한 자리가 있듯이 호밀빵 또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인빵도 사실 제법 괜찮을 수도 있겠죠. 호밀 외의 재료도 언뜻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시금치도 당근도 다 맛있잖아요.
청어는…….
[Fig 1. 우리를 천천히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멈출 수 없는 북해청어의 흐름]
……먹어보면 알겠죠. 그러니 시작합시다.
II. 이론적 배경
먼저 에오르제아의 현인빵 레시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ig 2. 제작수첩에 적혀 있는 현인빵 레시피]
……만들어본 적 없는 레시피군요. 어서 만들어봅시다.
[Fig 3. 이름을 새긴 현인빵]
재료 목록은 명확합니다. 검은밀가루, 청어, 시금치, 자색당근.
검은밀가루는 검은밀을 제분한 것인데, 검은밀은 샬레이안에서 호밀을 개량한 작물입니다. 따라서 호밀가루(Dark rye: 굵은 입자로 간 거친 호밀가루)를 쓰겠습니다. 청어는 그 새끼인 솔치로 대체합니다.
현인빵의 영양가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영양성분 비율을 맞춰보겠습니다. 다행히 마법대학 의학부에서 현재 개발중인 빵처럼 완벽한 완전식품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근접하는 게 좋겠죠. 소량영양의 경우 데이터가 미비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대량영양을 기준으로 맞추며 소량영양은 참고만 하겠습니다.
먼저 샬레이안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원재료의 영양성분을 파악한 후 간단하게 원재료의 비율을 조정해가며 대량영양 비율을 확인해봅니다.
[Table 1. 식품영양성분 분석 및 조율]
식빵 팬의 크기상 호밀가루는 300g을 쓸 생각이니 그걸 기준으로 재료를 조정해봅니다. 정확한 양은 부재료 가루의 질량 변화율을 알아야 하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III. 재료 및 방법
재료입니다.

[Fig 3. 현인빵 재료—왼쪽부터 자색당근, 발효종, 데친 안개시금치, 검은밀가루]
북해청어는 배송되는 데 좀 걸려서 먼저 야채가루부터 만들겠습니다.
마도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 야채를 건조시켜줍시다.
[Fig 4. 마르기 좋게 잘라서 펼쳐둔 자색당근과 안개시금치]
자 그러면 50℃에서 3시간……. 아니 4시간…….

[Fig 5. 마르지 않는 화수분…… 이 아니라 채소]
8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번 달 청린수 요금이 기대됩니다.

[Fig 6, 7. 지갑만큼 말라비틀어진 안개시금치 / 분쇄한 결과]
건조 전후로 계량 또한 잊지 않습니다. 영양성분 계산을 위해 필요한 정보입니다.
마도 믹서기로 재료를 갈아준 뒤 절구에서 컨셉샷을 한 번 찍고는 솔치가 올 때까지 냉동보관해줍시다. 자색당근은 건조하는 데 4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드디어 솔치가 왔습니다.
[Fig 8. 말린 새끼 북해청어(솔치)]
멸치처럼 생겼습니다. 맛도 멸치랑 비슷합니다. 좀 더 쫄깃하네요.
마찬가지로 수분을 최대한 제거한 뒤 갈아줍시다.
[Fig 9. 마른 팬에 볶아지는 솔치]
가루 3종 세트가 완성됐습니다.
[Fig 10. 어쩐지 비율이 언발란스한 가루 세트]
이제 영양 파트는 해결되었으니 본격적인 ‘빵’ 부분으로 넘어가봅시다.
영문판 설명에 따르면 현인빵은 호밀로 만든 푹신한 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호밀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이 별로 없어서 푹신해지기가 어렵습니다. 강력분을 추가해주면 이 부분은 개선할 수 있겠지만 고증에 맞추기 위해 오로지 호밀만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죽하기 전 전발효된 호밀의 비중을 높여 pH를 낮추고 일부를 호화(주: 물과 열을 가하여 전분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보완해봅시다.
[Fig 11, 12. 가내 반려미생물(미코) / 16시간 경과 후]
천연 발효종입니다. 사워도우 스타터라고도 하는데, 사워도우를 만들 때 반죽을 발효하기 위해 넣습니다. 밀가루와 공기 중에 서식하는 야생 효모와 젖산균을 포집하여 배양한 거라 특유의 신맛이 납니다.
반죽 전날 호밀 150g을 전발효합니다. 수분율 100%로 섞어 재워둔 뒤 다음날에 확인하면 잘 발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은 호밀 150g에 끓는 물을 100g 섞어 호화시킵니다. 야채가루와 생선가루 또한 계량해서 넣습니다.
호밀 총 300g에 시금치가루 29.5g, 자색당근가루 38.5g, 청어가루 87g이 들어갔습니다. 이로써 영양성분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Fig 13. 식용 톱밥]
전발효 반죽을 넣고 북해 식염도 3g 넣어줍시다.
[Fig 14. 바누바누족의 특제 풀경단 제작과정(아닙니다.)]
100% 호밀 사워도우는 보통 수분율 80~90%를 목표로 하지만 가루로 인해 적정 수분율 예측이 어려우니 반죽하면서 물을 적당히 추가해줍니다.
[Fig 15. 식용 진흙]
뚜껑을 덮고 30분 가량 짧게 1차 발효를 시킨 뒤 적당히 몇 번 접어줍니다. 밀가루 반죽이라면 글루텐 강화를 위해 반죽을 열심히 할 수 있겠지만 이건 호밀이라 시늉만 하겠습니다. 호밀은 매우 끈적거리기 때문에 손에 달라붙지 않게 물을 묻혀가며 틀에 맞는 모양을 만들어줍니다.
[Fig 16. 식용…… 덩어리]
기름칠한 식빵 틀에 넣고 최대한 눌러 끝까지 채워줍시다.
[Fig 17. 식용 콘크리트]
랩을 씌워 1.5시간 동안 2차 발효를 시킵니다. 중간쯤 마도 에어프라이어를 220℃(최고 온도)로 예열해줍니다.
[Fig 18. 자주색 반점은 곰팡이가 아닙니다 자색당근 조각입니다]
증기를 넣고 220℃에서 30분, 증기 없는 상태로 210℃에서 20분 구워줍니다.
멸치 냄새가 암운처럼 감도는군요.
IV. 결과
[Fig 19. 식용 벽돌]
빵이 나왔습니다. 겉보기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호밀 함량이 이렇게 높은 빵은 굽자마자 자를 시 증기가 빠져나가 식감이 매우 진득진득해지므로 하루 정도는 숙성시켜주어야 합니다.
처형일을 앞세운 처형수처럼 기다려줍니다.
[Fig 20. 이불을 덮고 잠에 든 벽돌]
다음날이 밝았습니다.
[Fig 21. 잘린 벽돌]
단면은 굉장히 파운드 케이크 같습니다. 공기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르자마자 멸치향이 한껏 강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으레 구운 빵에서 날 수 있는 버터향이라든가(안 들어감), 태운 설탕 향이라든가(안 들어감), 그런 건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멸치향입니다.
[Fig 22. 단면 클로즈업]
사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만 각도에 따라 빵 내부에서 은빛으로 드러나는 솔치가루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미래처럼 밝게 반짝거리는군요.
먼저 생으로 한 입 먹어보면…….
음!
멸치.
한 입 더 먹어보고 옆에 있는 혈육들에게도 한 입씩 먹여봅니다. 모두가 멸치 이외의 단어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단기적 어휘력 감퇴를 유발하는 이 빵이 과연 현인들의 주식으로 적합한지 고민해봅시다.
잠시 어휘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현인빵의 영양성분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Fig 23. 현인빵의 에너지 성분비]
먼저 탄단지 비율을 살펴보면 탄수화물이 63.6%, 단백질이 20.0%, 지방이 16.5%를 차지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없는 성인의 경우 식단 비율을 탄수화물 45-65%, 단백질 10-35%, 지방 20-35%를 목표로 삼아야 하므로 지방만 적당량 추가해 주면 문제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미량영양소가 충분한지도 확인해 봅시다. 법령으로 고시된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해당되는 항목들을 가져와봤습니다.
[Fig 24. 현인빵 1회 제공량(50g)의 영양정보]
몰리브덴과 아이오딘을 제외하면 얼추 적정 범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고로 몰리브덴의 독성 용량은 kg당 10mg으로, 몸무게가 70kg인 성인이 한 번에 현인빵 블럭 2800개를 섭취할 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영양분에 대해선 고찰 항목에서 부연하겠으나 일단 적절히 다른 음식을 섭취하여 채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한편 현인빵이 영양학적으로 다른 빵보다 우월한지도 알아봅시다.
[Fig 25. 식빵, 통밀빵, 현인빵의 영양성분 비교]
현인빵이 다른 2종의 빵에 비해 에너지와 탄수화물, 트랜스지방산, 포화지방산, 콜레스테롤이 적고 단백질, 당류,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류가 많은 건 자색당근의 영향이지만 그 외로는 영양가가 우월하다고 평가내릴 수 있겠습니다. 영양이라도 좋아야지
충분히 도피했으니 다시 맛으로 돌아옵시다.
멸치를 제쳐놓고 보면(안 제쳐집니다) 사실 그다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먹을 만한 ‘음식’으로 기능합니다. 사워도우로 발효한 것에 비해서는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살짝 새콤한 정도이며, 당근 분말의 단맛 또한 멸치(사실 청어입니다)와 호밀에게 묻힙니다. 생선의 짠맛이 두드러지고 쌉싸름하면서도 약간 고소합니다.
식감은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입니다. 파운드 케이크보다 더한 묵직함에 축축함, 그리고 솔치가루가 주는 거친 질감이 특징이군요.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먹을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꽤 괜찮습니다. 호밀 사워도우의 신맛이 신기하게도 거의 없어서 진입장벽이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으로는 충분히 즐겼으니 약간 베리에이션을 줘 보겠습니다. 100% 호밀 사워도우는 치즈나 버터와 어울리므로 여기에도 얹어 보겠습니다. 영양학적으로도 현인빵의 지방 함량이 약간 모자랐으므로 유지방을 얹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Fig 26. 벽돌이 음식으로 기사회생하는 장면]
나름 맛있습니다(정말!!!) 역시 버터는 레시피의 만병통치약. 버터의 부드러움이 현인빵의 짭조름한 맛을 감싸주니까 정말 사람 먹을 음식이 되었다는 느낌이네요. 치즈 또한 큰 개선을 보입니다.
한편 혈육들이 영영 멸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시식단을 초청했습니다. 많은 주옥같은 평가가 나왔으나 중요한 발언만 추려보겠습니다.
Q: 첫인상은 어떤지?
A: 브라우니.
B: 벽돌…… 아니 흉기.
Q: 향은?
A: 진득한 멸치향.
B: 이렇게까지 멸치향이어도 되는가?
Q: 식감은?
B: 멸치향 나는 칼로리 바.
A: 물고기 떡밥.
Q: 먹을 만한지?
A: 사료라고 생각하면 먹을 만할 것 같음.
B: 간단하게 먹긴 좋을 듯. 두려워했던 것에 비해선 괜찮음.
Q: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A: “왜 이런 걸 먹어야 하지?”
B: “음식은 맞는데 빵은 아니야”(이분은 이후로도 이 발언을 변주해서 한 다섯 번쯤 말했습니다)
+ B는 이 음식(빵 아님)을 먹은 당일, 멸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치실질을 평소의 2배로 해야 했다는 사실을 꼭 강조해 달라고 전했습니다. 마법으로 구강관리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도무지 편의성을 가진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고…….
V. 고찰 및 결론
먼저 영양성분 데이터의 한계점입니다.
청어,육,말린것 데이터(데이터생성일자: 1982-11-30)의 나트륨 함량이 1300.00mg으로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USDA 기준 생 태평양청어의 나트륨 함량은 100g당 74mg이며, Nofima(노르웨이 식품연구기관)의 2023년 보고상 생 청어의 나트륨 함량은 100g당 평균 102mg입니다. 말렸음을 고려하더라도 단백질, 지방 함량의 비율을 고려하면 과도한 수치입니다. 실제로 솔치와 유사한 멸치의 경우 소금물에 살짝 쪄서 건조하는 자건법을 공정에 사용하는데, 이를 통해 말린 솔치 또한 식염이 추가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추가 식염의 질량을 알 수 없으므로 실제와의 오차를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원재료의 조리 및 가공 과정에서 영양소의 손실 및 변성은 불가피합니다. 시금치는 데친 것을 기준하여 열 변성의 영향을 이미 받은 상태를 기준으로 했지만 당근은 생것을 기준하였기에 오류가 더 컸으리라 추측됩니다. 완성품을 이용하여 식품영양성분을 새로 분석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후속 연구에서는 위에서 나열한 본 연구의 한계점을 보완하여 진행하길 바랍니다. 누군가가 진행해주겠죠?
다음으로 현인빵의 영양에 대한 부연입니다.
비타민 B12(코발라민)와 비타민 D, 아이오딘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타민 B군과 비타민 D는 물론이고 아이오딘은 특히 해산물에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자료의 데이터 미비에서 기인한 오류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의 경우 부족한 데이터로 인해 과소평가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생 청어의 해외 데이터상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이 유의미하게 함유된 것으로 나타나므로 이 또한 후속 연구에서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인빵을 통해 샬레이안에서의 생활을 역으로 유추해보겠습니다.
아마도 누메논 대서원의 모든 책, 그리고 샬레이안 마법대학 구석구석에는 멸치 냄새가 가득 배어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편의를 위해 먹는 빵이라고 했는데 먹기만 해도 진득한 멸치 냄새가 손에 배고 옷에 뱁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먹은 현인빵의 향기는 고스란히 마법대학 등의 건물 벽과 천장에 켜켜이 쌓여 아름다운 전통의 향으로 실내 공기를 색칠해 나가겠죠…….
……아니면 샬레이안 곳곳에 생선 냄새를 빼는 마기구가 설치되어 있든가요. 샬레이안의 품위를 위해 후자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번외 I. 현인 샌드위치
만들어둔 게 아까워서, 그리고 0.5벽돌을 혼자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하는 김에 현인 샌드위치도 만들어봅시다.
재료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순서대로 외계양파, 오이, 아이스버그 양상추, 엘피스 새알 그리고 현인빵입니다.
외계양파는 얇게 썰어 찬물에 담가 매운맛을 빼줍니다. 오이 또한 얇게 썰고 북해 식염을 살짝 뿌려 수분과 쓴맛을 뺍니다. 아이스버그 양상추는 잘 씻고 현인빵은 두 조각 잘라줍니다. 엘피스 새알 1개로는 간단하게 오믈렛을 해줍시다.
현인빵에 버터(원 레시피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살려주세요)를 바르고 재료를 차곡차곡 올려줍니다.
……그런데 재료가 남네요. 왜 남을까?
그 이유는 현인빵 한 조각이 손바닥 크기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는 빵 반죽이 밀가루 빵만큼 오븐에서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요, 밑바닥까지 파고들자면 틀이 다 찰 만큼 이 창조물에 식재료를 충분히 쏟아붓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영양정보 측정을 위해 이미 재료를 다 계량해놓았으므로 애피타이저인 셈 치고 입 안에 우겨넣었습니다. 저속노화 선생님께서도 채소를 먼저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하여간 완성됐습니다. 정말 평범한 샌드위치처럼 보이지 않나요?
혼자 먹기는 외로우니 게스트를 소환해서 같이 먹어봅시다.
맛은 정말 괜찮습니다. 뭔가 고등어 샌드위치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고등어가 갈려서 빵 안에 들어간…….
양파의 매운맛이 살짝 남아있는데, 그 맛과 채소의 아삭함이 현인빵의 질척하고 눅눅한 뒷맛을 개운하게 내려주네요. 계란도 폭신해서 빵의 꾸덕함이나 채소의 아삭함과 식감적으로 대비를 주고, 버터가 그래주듯 지방질의 부드러운 맛이 전체적으로 퀄리티를 올려주는 기분입니다.
이 자체로는 사먹을 정도의 맛은 아닌데, 빵에 들어가는 호밀의 30-50% 정도를 강력분으로 대체하여 질감을 좀 더 폭신하게 바꾸고 케이퍼를 올리면 되게 어울릴 거라 생각합니다. 계란 대신 훈제연어가 들어가도 꽤 괜찮을 것 같네요.
영양을 분석해도 현인빵만 섭취하는 경우보다 더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유일한 흠은 콜레스테롤인데, 이는 달걀에 포함된 것이 대부분이며 통계적으로 일주일에 달걀 12개는 혈중 콜레스테롤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에서 미루어 보면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확실히 현인 샌드위치는 현인빵의 단점을 개선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외 II. 신생빵
사실 처음에는 빵으로 날로 먹으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빵 반죽 위에 쌀가루로 메테오 문양을 만들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을 테니 이거다! 했죠.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빵은 팽창합니다.
(14갈래로 쪼개진 메테오)
후기
세상의 모든 빵에게 감사합시다.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그 빵이 현인빵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합시다.
그럼 사흘째 현인빵으로 저녁을 때우며 글을 마칩니다. (먹다 보니 단독으로도 괜찮은 음식 같기는 합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볼 일 없다고 생각하니 정이 드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