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https://www.youtube.com/watch?v=D4UOPAOB0kg
다날란의 기후는 맥주에게나, 그걸 마시는 사람에게나 그다지 유쾌한 것이 되진 못했다. 김 빠진 미지근한 맥주를 한 차례 들이키곤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잔을 내려놓은 몽크는 입가를 닦으며 나직하게 뇌까렸다.
"덥군."
"그러게."
어둑한 펍 한켠에서 길다란 창을 휘적거리던 용기사가 답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날이 선 창날이 좁은 펍을 사방팔방 휘젓고 다니고 있었지만, 새파랗게 질려있는 펍 주인과 대단히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검술 교본을 넘기고 있는 나이트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그리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음유시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용기사."
"응?"
용기사의 고개가 음유시인에게 향하며, 함께 홱 돌아간 창대 끝이 나이트가 읽고 있던 교본을 툭 쳐서 떨어트렸다. 더이상 못참겠다는 듯 나이트는 곧장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용기사. 누누히 말했지만-"
용기사는 즉각 진절머리를 치며 손사래를 내저었다.
"아아, 안다고 알아. 실수야!"
"잘 안다는 놈이 또 왜 창을 온 사방으로 휘두르고 난리야?"
둘이 앉아있던 테이블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어느 틈에 몽크 옆에 앉아선 그 모양새를 흥미롭게 보고 있던 백마도사가 나직히 웃었다.
"좋을 때군요."
몽크는 입가를 살짝 씰룩였다. 입가에 가로지어진 흉터 탓에 그것이 미소인지, 일그러짐인지는 그 자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소란의 와중 어디선가 작위적인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늙다리 커얼 씨가 또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키 큰 학자가 음유시인을 향해 조소를 보냈다. 음유시인은 귀를 살짝 옆으로 젖히며 그를 향해 대꾸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말버릇 하고는... 더위라도 먹었냐?"
"그렇다고 해 두죠."
아무렇게나 주워섬긴 학자는 음유시인의 옆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대체 불멸대 놈들은 언제 온단 겁니까?"
"그들 나름대로 조사한다고 바쁘겠지. 아말쟈 족이 야만신 소환 의식을 대놓고 할 정도로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잖나."
"그래도 그렇지, 이딴 부랑자들 소굴에서 대기시켜놓곤 통 연락이 없는 게 도대체 며칠쨉니까? 나 참."
엘레젠은 신경질적으로 손부채질을 했다.
"가만 보면 역시 모래전갈회 끄나풀 수준에 불과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 꼴통 집단이 굴리는 나라인데 정규군이라고 멀쩡하겠습니까?"
"라우반은 훌륭한 사람이네."
"아아. 그 자는 인정합니다. 허수아비 여왕보단 백만번 낫지."
키득거리던 학자는 이윽고 나직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불멸대 일부가 변절한 거라면? 야만신 토벌을 목적으로 모험가들을 마른 뼈 야영지로 규합시켜놓곤 기습으로 한꺼번에 해치우려는 속셈이라면?"
늙은 미코테가 황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던 순간, 저 편의 백마도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가로챘다.
"와아, 훌륭할 정도로 말같잖은 음모론 잘 들었습니다. 어째 고약한 냄새가 난다 싶더니 지즈가 입을 놀리고 있었군요?"
"농담도 못하냐? 망할 커얼같으니."
엘레젠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미코테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지즈도 제딴엔 미인의 교태섞인 한숨이라 여기겠지만, 실제론 고약한 맹독을 내뿜지 않습니까?"
할 말이 없어진 학자는 오만상을 찌뿌리곤 털 날리는 족속들의 인성 따위를 주제로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음유시인은 그 모양새를 보며 너털웃음을 한 번 터뜨리곤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용기사와 나이트를 향해 말했다.
"젊은이들, 사랑싸움은 그쯤 하는 게 어떤가?"
나이트가 소스라치게 반응했다.
"누가 사랑싸움한단 겁니까?"
"어? 아냐?"
빡!
눈치없는 용기사의 정수리에 나이트의 철권이 작렬했다. 건틀릿을 낀 주먹에 맞은 터라, 엄청난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용기사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농담도 못하냐!"
"정도껏 해야지!"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쏘아붙이는 나이트 덕에 펍엔 한 차례 큰 웃음이 일었다. 나이트가 애써 해명하려 입을 열려던 순간. 펍의 입구 쪽에 길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펍에 들어선 장신의 여인은 이윽고 굳은 표정으로 빈 테이블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낡은 나무판자 바닥이 내지르는 나직한 비명과, 그녀가 짚고 있는 스태프에 매달린 염주의 짤랑거리는 소리만이 펍을 가득 매웠다.
알수 없는 침묵을 몰고 온 그녀가 자리에 걸터앉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다날란의 기온과 맞물려 숨막힐 듯 사람들을 죄어왔다.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멍하니 무언가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용기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흑마도사. 스승한테 혼났어?"
"..."
섬짓한 표정으로 용기사에게 시선을 돌린 그녀의 표정이 난데없이 일그러졌다.
"후에에에에에에에엥...."
다들 황망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곤 서럽게 우는 흑마도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능글맞게 웃고 서 있던 백마도사가 용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용기사. 여자를 울리다니 못써요."
"그,그래. 맞아! 이 나쁜 놈!"
잠시 당황하던 나이트가 이윽고 고개를 주억거리곤 주먹을 치켜들었다.
"자,잠깐!"
"커얼 인성 수준 하고는..."
또다시 벌어진 실랑이에 학자가 한숨을 푹 쉬며 뇌까리자, 백마도사가 난데없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학자와 음유시인에게 백마도사는 짐짓 힘겨운 표정으로 웃음지어 보였다.
"쿨럭쿨럭! 크흡... 죄송합니다. 제가 지즈 독에 알러지가 있어서..."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낸 학자는 다시금 꼬리와 귀가 달린 종족의 인성 수준에 대해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나이트를 제지한 용기사가 흑마도사를 달랬다.
"흑마도사. 또 그 코코부시인지 하는 라라펠이 한 소리 한 거야?"
"...으응."
"이번엔 또 왜 그랬는데?"
흑마도사는 어울리지 않는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움브랄... 훌쩍. 아이스... 제어가... 어떻게 하나도... 크응! 나아진 게 없냐고... 훌쩍..."
"야, 괜찮아!"
용기사는 짐짓 기운찬 어조로 흑마도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움브... 몰라! 아무튼 화끈하게 태워버리는 건 잘하잖아! 자부심을 가져! 그런거 못해도 된다고!"
"그...그래?"
흑마도사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용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번에 구리종 광산에서 실수로 폭약을 불태우는 바람에 큰일 날 뻔한 것 정도는 아무것도..."
"...후에에에에에에에에엥..."
흑마도사는 다시금 고개를 처박곤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당황한 용기사의 정수리엔 다시금 나이트의 정의의 철권이 날아들었다.
빠악!
"으악! 또 왜 때려!"
"넌 어떻게 위로를 해준다면서 더 울리냐?"
"감동해서 우는 거잖아!"
"으이구, 이 화상아!"
다시금 펍은 소란스러워졌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촌극을 바라보며 학자와 음유시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도 싸군."
"그렇죠?"
남아 있던 맥주를 마저 들이키려 잔을 쥔 몽크는 어느새 잔이 텅 빈 것을 발견했다. 몽크의 미심쩍은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눈치챈 옆자리의 백마도사가 싱긋 웃었다.
"다날란의 맥주는 영 맛이 없군요?"
몽크는 피식 웃고는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 때, 펍의 문이 벌컥 열렸다.
"...?"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쏠렸다. 그곳엔 불멸대 병사가 문을 열어재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을 가다듬은 그는 이윽고 갈라진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나타났습니다!"
펍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작이군."
몽크의 나직히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소 비장한 어투로 나이트가 뇌까렸다.
"드디어... 올 게 왔군요."
음유시인이 학자의 팔을 툭 치곤 씩 웃었다.
"아까 뭐라고?"
학자는 퉁명스럽게 툴툴거렸다.
"거짓말은 아니었군요."
백마도사가 웃음띈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자. 무리들 하지 마시길.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답니다?"
"...재수없는 소리만 골라서 하네."
학자의 툴툴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웃어보이는 백마도사의 뒷편에선 퉁퉁 부은 눈의 흑마도사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은 채 스태프를 양 손으로 힘있게 쥐고 있었다.
"...."
펍의 중앙에 당당히 선 용기사는 예의 창을 꼬나들곤 큰 소리로 외쳤다.
"좋아, 가자!"
그리곤 보란 듯 씩 웃었다.
제 7성력 8년 그림자 4월 14일. 야만신 이프리트 토멸전이 시작되었다.
FC멤버들 모티브로 쓴 다소 불친절한 단편이네요
세계관을 다들 알고 계시다고 상정하고 썼습니다
파판 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