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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단편집 - 7 - 날달의 연인(3)

번호 259
사보텐더 | 격투사 | Lv.50
15-10-19 08:33 조회 8545

 

이 작품은 다른 단편집과는 달리 99% 픽션입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나 장소는 모두 가상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물론, 실제 퀘스트와도 스토리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고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녀가 보고 싶어.”

 

 야야가 편지를 배달하고, 그 뒤로 몇 번이나 편지를 오고 간 후의 어느 날. 편지를 받으러 온 야야에게 파파리오는 돌연 그런 말을 했다.

 

“…네?”

“그녀가 보고 싶다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야야에게 파파리오는 강조하듯 다시 한 번 말했다.

 

“보는 거야 매일 보잖아요. 무대 위에서.”

“그게 아니라! 진짜 그녀가 보고 싶다고!”

 

 파라리오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야야에게 소리치듯 설명했다.

 

“내가 보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대본에 따라 웃고 우는 무대 위의 줄리안느가 아니라고!”

“그럼….”

“그래. 직접 만나서 대화도 하고, 쓰다듬어도 주고…아무튼 진정한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

 

 파파리오는 확고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아직도 ‘저 사람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야야에게 거듭 부탁했다.

 

“이렇게 부탁한다! 제발 그녀를 만나게 해줘!”

“…….”

“추가 요금은 얼마든지 낼 테니까…!”

“아니, 요금도 요금이지만….”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던 야야는 한동안 고민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이런 의뢰 당연히 거절했겠지만…뭐, 좋아요!”

“정말!?”

“이대로 거절하기엔 그동안의 정도 있고…또….”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리니까, 야야는 마저 하지 않은 말을 삼켰다. 이런 말을 대놓고 했다간 파파리오가 또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편지를 배달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파파리오는 정말이지 칭찬을 해주면 안 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뭐라도 하나 칭찬만 했다하면 과거에 자신은 투기장의 잘나가는 스타였다느니, 도전자들을 모조리 작살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야야는 그것을 파파리오의 무용담을 들으며 날밤 세운 첫날에 깨달았다.

 

“자, 그럼 어서…! 줄리안느에게 가서 밤 12시,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화원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줘.”

“전해주기만 하면 끝이에요?”

“그걸로 끝일 리가 있나! 줄리안느는 가련한 여배우라고?! 혼자서 그 거대한 나무를 타란 말이야?!”

“아…그런데 배우인 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이따가 데리러 올까요?”

“난 괜찮아. 난 이래보여도 투기장에서 꽤 이름을 날렸던 투사였으니까.”

“그건 이미 들었지만…근데 그거 정말이에요?”

“당연하지! 뭐야 그 의심의 눈초리는!?”

 

 야야는 대답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파파리오를 쏘아봤다. 라라펠 특유의 짧뚱한 팔다리, 그리고 야야와 비슷할 정도로 작은 키, 통통하기 짝이 없는 배- 아무리 봐도 투사에 걸맞은 몸이 아니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엥?”

“몽크를 하고 있는 라라펠이 팔다리를 트집 잡지 마!”

“아, 아하하- 그건 그러네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은 야야는 창밖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정말이지. 앞뒤 안 맞는 녀석이야….”

 

 뒤에 남은 파파리오가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왜 안 오지?”

 

 아직 기다리기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았건만, 파파리오는 불안감에 휩싸여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1분…2분…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고, 더욱더 심해져, 앉아 있지도 서 있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야야 녀석. 실수한건 아니겠지?”

 

 몰래 데리고 나오다가 들켜서 다시 갇혔을지도 모른다. 꽤 실력 있는 모험가라고 들었지만, 하는 짓만 보면 영락없이 철부지 꼬맹이라 좀처럼 안심이 되질 않는다.

 

“줄리안느에게 무슨 일만 생겨봐라…! 내가 직접 부대로 쳐들어가서 모조리 작살을…!”

“파파리오님!”

“…줄리안느?”

 

 돌아본 그곳에는 줄리안느가 서 있었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비볐지만, 확실히 줄리안느였다. 화원의 꽃들마저 빛을 잃는, 밤의 어둠마저 가리지 못한 찬란함을 가진 미의 여신이 거기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오…!”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파파리오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뒀던 찬미의 말들도, 그녀의 귓가에 속삭여 줄 생각이었던 사랑의 단어들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파파리오님~!”

 

 텅 빈 머릿속에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와선, 머릿속을 그녀로 가득 채우고는 자신마저 불렀다. 마치 이곳에서- ‘그녀’밖에 없는 세계에서 함께하자고 하는 것만 같았다.

 

“파파리오님!”

“어, 어!?”

“괜찮으세요?”

“어, 어- 물론! 괜찮고말고!”

 

 환상에서 깨어난 것은 줄리안느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파파리오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을 때였다. 멍하게 그녀를 보고 있다 깨어난 파파리오는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역시 파파리오님…무대에서 뵐 때보다 훨씬 멋있고 귀여우셔요…!”

 

 마침내 만난 흥분에 홀린 것은 줄리안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파파리오를 보며, 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귀엽고, 신사적이며 멋지다는 걸 알게 되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

 

 파파리오의 시선은 줄리안느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애정으로 가득한, 세상에 둘도 없는 것을 보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줄리안느는 마치 그 시선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두 손을 모아 쥐고 끝없는 존경과 애정을 담은 말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파파리오님을 만나뵙다니…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하는 마음에 얼마나 뺨을 꼬집었는지 모르겠어요!”

“뺨에 난 상처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군. 줄리안느.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내 사랑. 당신 앞에 있는 나는 환상도 꿈도 아니야. 현실에 있는 파파리오 그 본인이지.”

“…파파리오님.”

 

 부드러운 파파리오의 대답에 줄리안느가 눈을 반짝였다.

 

“줄리안느. 무대 위의 당신도 보석 같이 아름다웠지만, 지금 당신에 비할 바는 아니란 걸 깨달았어. 지금 당신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어. 눈이 부셔서 도저히 뜰 수가 없을 정도야.”

“그런 과분한 칭찬은 그만둬주세요! 파파리오님. 저는 단지 당신이라는 태양 아래 힘겹게 고개를 드는 이름 없는 잡초일뿐이에요. 파파리오님께서 저를 봐주신다는 사실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예요.”

 

 파파리오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어, 부드럽고 조용하게 줄리안느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말 말아. 줄리안느. 나는 태양 같은게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달이지. 태양을 쫓아 세상을 끊임없이 맴도는, 태양의 빛을 받아야만 빛나는 달.”

“파파리오님….”

 

 갑자기 옆에 있던 바위 위로 올라가는 파파리오. 그 위에서 그는 줄리안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줄리안느. 나의 태양. 내 사랑을 받아줘. 나는 당신을 줄곧 사랑하고 있었어. 그래. 무대 위에서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처음 이 극장이 문을 열고, 무대 위에 오른 파파리오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반짝이는 보석과 화사한 드레스와 기름진 요리 가운데에 선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첫 공연에 대한 불안감에 고개를 숙인 채로 몇 번이고 대사를 되뇌는, 보고 있으면 지켜주고 싶어지는 아름답고도 가련한 꽃 한 송이를 말이다.

 

“사랑해. 줄리안느. 당신을 위해서라면 달이 되어 세상을 영원히 맴돌아도 좋을 정도로.”

“파파리오님…!”

 

 파파리오가 손을 뻗어 줄리안느의 어깨를 잡았다. 그에 줄리안느가 말없이 그의 품에 기댔다. 마치 품안에 있는 상대방이 환상이 아님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파파리오님….”

“줄리안느….”

 

 은빛으로 빛나는 달빛의 아래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사랑을 가득 담은 낯부끄러운 단어들은 더 이상 오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어 있었다.

 

“…….”

“…….”

 

 긴장과 흥분으로 내뱉는 거친 호흡이 서로의 피부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심장은 아플 정도로 거세게 뛰었고, 붉어진 뺨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

 

 마침내 호흡마저 같아졌을 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였다. 말없이 다가가 입술을 맞춘 그들은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진하고, 길게- 마치 그들의 사랑이 그러하리라고 맹세하기라도 하듯이 입을 맞췄다.

 

“…험험.”

“…야야 씨는 어디 가셨을까요?”

 

 영원보다 길고, 찰나보다 짧았던 그 순간이 끝나고, 마침내 떨어진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어색함에 한껏 딴청을 피웠다.

 

“그러고 보니 왜 혼자야? 야야는?”

“그게…제가 내려올 길을 만들겠다고 잠깐 경비대의 주의를 끈다고….”

“뭐? 그 바보가 기어코…설마 잡히진 않았겠지!?”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그랬다면 대소동이 났을 테니까요.”

“그럼 좋겠는데…혹시라도 그거 때문에 네가 방에 없는 게 들통 나기라도 한다면….”

 

 핑, 현을 퉁기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화살이 중얼거리는 파파리오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애초에 일을 벌이질 말았어야지.”

 

 몹시 듣기 거북한 목소리.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 목소리- 파파리오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거기에는 이죽이죽 웃으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나무 갈퀴가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화살을 날린 것 같은 활- 그리고 그의 뒤에는 무기를 들고 걸어 나오는 그의 용병대.

 

“대체 무슨 속셈이지? 파파리오. 모험가까지 고용해서…극단 최고의 배우 둘이서 야반도주라도 할 생각이었나?”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갑자기 그래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드는 군.”

“어이어이. 그래서야 안 되지. 그건 계약위반이잖아? 그럼 널 처분할 수밖에 없어.”

 

 극단 최고의 배우를 처리해야하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나무 갈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줄리안느. 도망쳐!”

“…네?”

“도망가라구! 저것들, 탈주를 핑계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파파리오님은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

“싫어요! 파파리오님도 함께 가지 않으시면…!”

“지금 떼 쓸 때가 아니야!”

 

 버럭 소리치고는, 자세를 잡는 파파리오.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방패와 칼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은 뭐든 준비하고 볼일이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그랬다. 등 뒤에는 지켜야하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눈앞에는 그것을 빼앗으려는 적이 있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가 아니었다. 다행이니 뭐니 같은 운 이야기를 할 때도 아니었다. 이 순간 모든 것은 빛을 잃고, 그 의미를 잃었다. 오직 하나, 자신을 비추는 태양, 자신의 연인이자 모든 것, 줄리안느를 위해- 그녀를 지키는 것만이 남았을 뿐.

 

“파파리오님…!”

“부탁이야. 줄리안느. 제발 부탁이니까. 도망쳐 줘.”

“하지만…!”

“줄리안느!”

 

 부드럽지만 단호한 파파리오의 외침. 그 외침에 줄리안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빨리 가.”

 

 마치 소리를 질러 미안하다고 하고 있는 것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 그 목소리에 결심을 했는지, 줄리안느는 마침내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 꼭…꼭 다시 만나요.”

“…그래.”

“약속이에요! 반드시…지키시리라 믿을게요…!”

“물론이야. 줄리안느.”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파파리오님. 다시 만날 거니까. 그 대신….”

“그래. 물론이지. 줄리안느….”

 

 눈물을 삼키는 듯한 정적이 흐르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입을 맞췄다.

 

“사랑해.”

“사랑해요.”

 

 달려 나가는 줄리안느. 그 뒤를 파파리오가 틀어막듯이 섰다.

 

“잡아!”

 

 나무갈퀴의 말에 몰려드는 적들. 그리고 그 앞에 다짐하는 파파리오.

 

“반드시 지켜내 보이겠어!”

 

 파파리오는 그렇게 말하곤,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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