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아트 게시판

Present is present #시작된 여정-14

번호 1621
카벙클 | 비술사 | Lv.80
19-12-31 00:11 조회 9371

칠흑 너무 재밌어요 ㅎㅎ

여러분도 재밌게 즐기고 계시나요?


*

 

...”


딸깍. 그녀는 샤이나의 개인실 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명의 모험가들은 일단 1층 로비에 있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너덜해진 옷을 갈아입으러 다시 방으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녀는 필요하다면 그 자리에서 대화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리리아의 무언의 압력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저들도 낯설고 어색했다. 그래서 빠르게 대화를 마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 그렇게 말하면 여자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 아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야. 너도 잘 알잖아!?’


푸하하! 아가씨가 이해해주게. 지금 이 친구가 보기와 다르게 많이 긴장하고 있어서 말이야.’


시간이 된다면 그 소환수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만.’


녹티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에요. 때를 가리세요.’


저기, 나 기다리는 동안 네 꼬마친구들과 함께 놀아도 될까?’


그때의 대화를 생각해 내고는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호선을 그렸다. 그렇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 잭이라 하는 사람은 파이널판타지14의 트레일러 영상에서 나왔던 전사와 많이 닮았었다. 갈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의 휴런 남성.

그녀는 당황해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휴런 남성을 생각하며 쿡쿡 웃었다. 그렇지만 꼬마친구가 열어준 옷장 속에 있는 수십 벌의 옷을 보고 울상이 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옷들 앞에서 멈춰선 그녀에게 꼬마친구들은 각자 나서며 이 옷자락, 저 옷자락을 끌어들이며 그녀에게 어필했다.

게임 속에서는 예쁘다며 샤이나에게 입혔던 옷들이지만 실제로 입어보는 처지가 되자 차마 쉽게 입기 힘든 옷들도 많았다.

그녀는 그 중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된 옷으로 얼른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 실례합니다.”


모험가들이 쉬고 있는 방에 들어가자 각자 장비를 벗어놓은 채 편한 옷으로 대기하고 있던 잭 일행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집중되었다.

괜스레 그녀는 시선을 낮추며 자신의 옷차림이 이상한 건 아닐까 생각하며 쭈뼛쭈뼛 물어보았다.


, 혹시 옷이 좀 이상한가요?”


새하얀 손이 옷매무새를 매만지자 새하얀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옷감 위에서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고급진 천을 사용한 듯 흰 저고리의 가슴팍에는 분홍색 꽃이 피어있었다. 연분홍 빛 꽃무늬가 수놓아진 폭 넓은 주름치마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도 물결치며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얀 머리 위에는 비녀와 두 개의 작은 리본이 흰 설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잃고 있었던 잭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 아니. 이상하지 않아. 잘 어울린다.”


정말요?”


. 엄청 예뻐. 어딘가 귀족 집안 아가씨인 줄 알았다니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째선지 미코테 여성은 까닭 있는 웃음을 지으며 휴런 남성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미코테 여성과 라라펠 여성은 꼬마 친구들과 놀고 있었던 것 같았다. 혼자서 유일하게 아직도 검은 옷으로 겉모습을 둘둘 감싼 채 마도서를 읽고 있는 엘레젠 남성을 향해 의아한 시선을 던진 그녀의 뒤로 꼬마친구들이 줄줄 들어왔다.


죄송해요. 도와주셨는데 대접도 못해드리고...”


? 걱정 마시게. 대접은 잘 받고 있으니. 아가씨가 이들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말한 루가딘 남성 앞에는 과일과 음료가 담긴 컵이 놓여있었다. 깜짝 놀라는 그녀의 뒤로 꼬마친구 몇몇이 탁자 근처로 뛰어오르며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큰 쟁반을 옮겨왔다.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세워보였다.


너무 만능이잖아..!’


그녀는 이제 꼬마친구들의 서포팅에 어디에서, 라던가 어떻게 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버렸다. 그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고마워할 뿐.


열심히 의자까지 비켜 놔주는 꼬마친구들에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은 그녀는, 잭 일행에게 식사를 권했고, 자그마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도중 잭 일행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난 후.


상황 설명이요?”


그녀의 물음에 답한 것은 고기를 큼지막하게 썰고 있던 에단이었다.


그렇네. 우리도 목격한 것이 있지만 아가씨의 증언이 더해지면 일처리가 빨라진다고 하더군.”


그래도 말하고 싶지 않을 부분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녀는 리리아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어떤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정상적이고 평범하며, 어떤 것이 비정상적인걸까.


내가, 그리고 이 집이 비정상적인 것이 들통 난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고개를 숙인 채 고민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다른 뜻으로 오해했는지 잭이 한마디 덧붙였다.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어찌됐든 그 강도들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될 테니까.”


그녀에게 있어서는 괴로운 기억이었을 테고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며 배려하는 잭의 말에 그녀는 잭의 표정을 살피고, 다른 이들도 한 번씩 둘러본 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역시, 속이는 것 같은 건 잘 못하겠어.’


아니요.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렇지만, 궁금한 점이 생기셔도 일단 끝까지 들어주세요. 저도 모든 걸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감정적이지 않도록, 노란셔츠인 줄 알았던 강도들이 찾아왔을 때부터 자신이 기절하기 전까지.


새삼 돌아보니 다시금 느껴지는 자신의 무모한 행동과 그 폭력의 기억은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녀의 몸을 가볍게 떨리게 만들고 입을 바싹바싹 마르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도 모른 채 자꾸만 미안하다며 물을 찾았다.


잭 일행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그리고 안타깝게 바라보며 경청했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침묵이 방을 감싸자, 잭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


아뇨. 도움이 되었나요?”


그래. 충분해.”


다행이다. 라며 희미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본 레키가 결국 분을 참지 못하다 벌떡 일어섰다.


아아! 정말! 그 녀석들 기회가 됐을 때 좀 더 패줘야 됐어!”


그러더니 레키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아왔다.

갑자기 안겨 깜짝 놀란 그녀가 눈만 데굴데굴 굴렸지만 다른 일행은 딱히 말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색한 감정은 레키가 그녀에게 속삭인 말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미안해. 내가 좀 더 빨리 발견했더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요. 오히려 도와주셔서 제가 감사해요.”


그녀는 살며시 레키를 마주 안아주며 잠깐의 안락함을 누렸다. 포옹이 풀어지고 그녀는 다른 일행의 시선에 부끄러워하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 이제 더 물어보실 것은 없나요?”


? , 이제 충분해.”


, 그런가요?”


집안 가구가 다 부서졌었는데 원상태로 복구되었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물어보려는 기색이 없자 오히려 그녀는 당황했다.

 

, 한 가지 있었군.”


!?”


잭은 깜짝 놀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 자신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만났어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생각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편이었다.

 

뭔가 비밀이 있는 듯 했지만, 아마도 가구가 복구되었다는 일에 대해서겠지. 그 일은 진작 녹티스가 해석을 해 놓은 상태였다.

또 다른 비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몸을 떨면서 그래도 용기를 내며 말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더 캐물을 수가 있을까?

적어도 잭은 그 정도로 무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호기심 반, 필요 반의 질문은 괜찮지 않을까.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을까?”


...”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이름은 샤이나였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지금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그녀는 그 이름을 사용할 각오가 부족했다.


“...‘이나’. ‘이나에요.”


힘겹게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온 말은 이나라는 단어였다.

부대원들이 샤이나의 닉네임을 줄여서 애칭으로 부르던,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 이름.


그녀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자신을 한심하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미련을 남긴 채 한 글자를 뺀 그 이름이 지금의 내 모습 같다고, 그렇게 느꼈다.

 

*

 

그 후의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즐거웠던 시간이 되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접시와 식기를 척척 가지고 나간 꼬마친구들은 여러 디저트와 과일을 가져왔고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던 분위기는 점차 풀리며 담소가 이어졌다.


그녀가 잭 일행에 대해 궁금증을 표현하자 그들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정중한 자기소개를 했다.


숲속에서 사냥꾼 출신이었던 잭과 레키. 리리아의 사용인이자 충신이라 자칭하는 에단과 사정이 있어 지금은 모험가 생활을 하게 된 말할 수 없는 집안의 아가씨 리리아. 그리고 지식을 탐구하며 곳곳을 떠도는 방랑자 녹티스.


그럼. 잭님. 레키님. 에단님. 리리아님. 녹티스님 이라 부르면 되나요?”


아니, 그건 그거대로 부담스러운데...?”


그녀는 순수하게 파이널판타지14에서 플레이어들을 부를 때 존칭을 쓰던 습관대로 무심코 불렀을 뿐이었지만 잭 일행은 난데없는 극존칭에 당황해 했다.

그녀도 금세 실수를 눈치 채고 부끄러워하며 ‘-를 붙여 부르기로 했다.


그 와중에 레키가 장난삼아 그럼 나도 이나님이라 부를게?’ 라고 한 말에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한방울 눈물을 흘려 소동이 되기도 했다.


담소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모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정보를 얻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현역 모험가인 그들에게 이야기를 관심을 표현했고 에단이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잭과 리리아가 중간 중간 이야기에 살을 붙였고, 레키는 하프를 연주하며 흥이 돋았는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소란스럽지만, 활기가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느낌이 가득한 시간이 흐르고, 아쉽지만 어느덧 밤은 깊어져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이런, 제법 늦은 시간까지 실례했구만. 미안하네. 아가씨.”


실례라뇨. 저도 정말 즐거웠는걸요.”


식사 정말 맛있었어.”


.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평안한 밤 되시기를.”


신세졌다.”


에단, 레키, 리리아, 녹티스의 말에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들이 저택의 입구에 이르자 잭은 그녀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저녁식사 고맙다. 나머지는 우리의 의뢰이기도 하니 우리 선에서 잘 처리하도록 하지. 걱정하지 마.”


그녀는 내밀어진 손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손을 마주 내밀어 그 손을 잡았다.


- 잡았고, 한동안 멈춘 듯 가만히 있다가, 놓았다.


~ 뭐해. 빨리 와~”


, 미안. 그럼 이만. 푹 쉬어라.”


“.... 안녕히 가세요.”


따라오지 않는 잭에 먼저 나섰던 레키가 이상함을 느껴 잭을 부르자, 잭은 몸을 돌리며 일행을 향해 척척 걸어갔다.


그녀는 떠나가는 모험가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를 했다.

 

*

 

그건 뭐였을까?’


위로는 어두운 하늘 바다. 아래로는 별빛에 비춰진 깊이를 알 수 없는 밤바다.

안갯빛 마을의 밤은 새카맣지만, 그만큼 반짝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별의 향연과 달을 보며 밤바람을 즐기던 그녀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잭 씨와 악수했을 때 보인 그것. 영상..? 아니면 기억?’


잭의 손을 잡았을 때 작은 두통과 함께 그녀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들어왔던 그것.

마치 화면 너머로 보는 영상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훨씬 더 생생한, 그리고 세피아 색으로 바래진 사진과도 같은 그것.


그녀는 이미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초월하는 힘’. 과거를 넘고, 미래를 넘으며, 타임의 마음의 방벽도 넘나드는 신비한 힘. 그리고 파이널판타지 14의 플레이어, 즉 빛의 전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그렇지만, 그 초월하는 힘이 그녀 자신에게 발휘된 것. 머릿속으로 인정하기 힘든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녀는 초월하는 힘이 보여준 영상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잭와 처음 보는 금발의 여성, 그리고 로브를 쓰고 고글을 끼고 있는 키 큰 엘레젠 남성. 세 사람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먹먹하게 들리는 소리 때문에 명확한 대화 내용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엘레젠 남성의 한 마디는 붙잡을 수 있었다.


바로 [수신 리바이어선을 소환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했습니다.] 라는 첫마디를.


리바이어선이라니...”


리바이어선. 라노시아 지역의 원주민인 사하긴 족의 야만신. 바다를 지배하는 수신.

그리고 게임 상과 똑같다면 그녀의 부대하우스가 위치한 곳은 해양도시 림사 로민사의 안개빛 마을.


물론 언제 적 일인지 알 수도 없고, 이 영상만 믿을 수도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그녀의 생각이 리바이어선을 향해 뻗어나갔다거대한 쌍동선, 그 앞을 가로막는 뱀과 같은 긴 몸통을 가진 수룡.

그 모습, 그 힘, 공격패턴과 공략하는 방법 등이 머릿속에서 좌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너무 앞서간다며 일단 그 생각을 머릿속 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게임과 같다고 생각할 수 없어.’


게다가 그녀에겐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잭 씨가 빛의 전사? 그럼, 샤이나는?’


그녀는 당연히 샤이나가 빛의 전사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초월하는 힘이 보여준 영상 속에서는 샤이나의 위치에 잭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대전제가 무너지자 그녀는 가벼운 혼란에 빠졌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샤이나가 빛의 전사라는 것도 근거가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아...”


그녀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하고 내쉬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만약, 만약 샤이나가 빛의 전사가 아니라면, 이세계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그렇다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못됐네. 나는.”


그녀는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귀찮은 짐을 벗어서 편하지 않냐는 생각이 혐오스러웠다.


애초에 그녀가 느끼는 부담감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샤이나가 아니니까.

그러니 나 몰라라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녀가 샤이나로써 파이널판타지14를 플레이하면서 쌓았던 추억이 모두 거짓말이자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다른 플레이어였든, NPC였든, 그녀에게는 모두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었던 소중한 추억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녀의 속에 소용돌이치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쑥 가라앉았다.


, 그렇구나. 그래서 나는...’


그녀는 그제야 샤이나가 빛의 전사이길 바랐던 자신의 모습과, 이유를 알 수 없던 부담감의 이유를 알아챘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어찌 보면 순수한 그것.


그녀는 그것을 알아채고, 곱씹으며, 바로 오늘 몇 시간 전에 샤이나로서 싸우려 다짐했던 것을 생각해내고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팔 안에 파묻었다.


으으응... 고개를 파묻을 채 웅얼거리며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애꿎은 달을 보며 화풀이하듯 투덜거렸다.


하아. 너는 왜 이제야 보이는 거야.”


그녀의 눈은 달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야에는 또 다른 것이 보이고 있었다.

새하얀 달을 바탕으로 떠있는 반투명한 창들. 파이널판타지14에서 플레이하며 늘 보았던 Hud 시스템 창이었다. 


파이널판타지14에서 플레이어가 쓰는 스킬을 등록해둔 단축바, 인벤토리, 상태창 등 시스템창을 일명 Hud라 부르고 있었다.


그 중 스킬들이 등록되어 있는 단축바가 그녀의 시야에 둥둥 떠 있었다.


자신이 커스텀마이징한 그대로인 그 모습이 반갑기도 했지만 왜 이제야 나오지는 지 야속하기도 했다. 단축바는 초월하는 힘이 그녀에게 영상을 보여준 직후 보이기 시작했었다.


왜 위급할 때가 아닌 이제야 보이는 것인지. 잭 일행이 빛의 전사라면 샤이나는 이 세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보다 리아비어선 소환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 속 답답함은 한결 가셨어도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다.


하아암... 모르겠다. 일단 자야지.”


시간도 시간이지만, 대소동을 겪었기 때문에 몸이 피로를 호소했다. 하품과 함께 크게 기지개를 핀 그녀는 몸을 돌려 침대로 몸을 던지려 했다.


그때 시야 한구석에 달그림자에 감춰진 주택 마당 안에 검은 그림자가 슥, 스쳐지나가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경계하며 다시금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지만 그곳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듯 고요한 그림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못, 본거겠지?”


한참을 살펴봐도 이상이 없자 그녀는 창문을 꼭꼭 잠그며 꼬마친구들에게 이끌려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달라붙어 함께 잠을 청하는 꼬마친구들과 신체의 짙은 피로감으로 인해 금세 수렁에 잠기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안개빛 마을은 말 그대로 안개와 같은 새하얀 돌로 도보와 벽을 쌓아올린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새하얀 길을 따라 생각에 잠긴 채 걷고 있던 잭은 문득 고개를 들어 다른 일행에게 말했다.


저기 그녀는 어땠어? 단순하게 그냥 너희의 생각을 들려줘.”


뭐야. 아까부터 계속 뭔가를 생각한다 했더니. ?”


, 아니. 별거 아니야. 특히 네가 생각하는 건 아니야.”


흐음.. 잭의 표정을 살펴보던 레키는 그런 쪽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고는 훌쩍 길옆에 돌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하긴 저 둔탱이가 그런 쪽 이야기를 할 리가 없지. 레키는 뒷짐을 진채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생각했다.


엄청 예뻤지? 몸도 부드럽고 스타일도 좋고. 그런데...”


어찌 보면 그녀와 가장 많이 스킨십을 했던 레키는 그녀의 몸과 접촉을 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딱히 전투직의 무언가를 배운 것 같지는 않았어. 근육도 많지 않았고.”


그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수많은 꼬마 친구들과 아름다운 저택과 정원이었다.


꼬마 친구들도 많고 가구들도 다 이름난 장인이 수제로 만든 것 같았어. 일단 엄청 부잣집 아가씨라는 느낌일까?”


흐음.. 그렇다면 이 이야기도 들려줘야겠.”


레키의 말을 듣던 에단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레키에게 노란셔츠에게 얻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 녀석들을 넘기고 난 후에 들었지만, 그들에게 불길의 소환수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는 상처 외에도 심각한 상처가 있었다네. 휴런 남성은 엄지손가락 절단, 루가딘 남성은 발 뼈에 금이 갔고 코뼈도 주저앉았더군. 그리고, ... 말하기 쉽지 않지만 여성에게 쉽게 들려줄 수 없는 부위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했네. 자네들도 봤다시피 그 소환수는 불꽃과 참격을 사용했었네. 이러한 상처를 남길 리 없지. .”


그 루가딘 강도가 느꼈을 고통을 상상해보다 저도 모르게 몸부림을 치던 에단의 말에 레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거 정말이야? 난 못 믿겠어.”


정황이 말해주고 있지. 그것은 두 손이 묶여있던 아가씨가 한 일이야. 우리 생각보다 힘이 장사인 모양이더군. 우리에게 설명할 때는 그저 저항했다 라고만 말했지만 분명 그 말 이상으로 필사적이었겠지. 용감한 아가씨야. 그렇지만 식사 중의 모습을 보면 순진한 귀족 집안의 아가씨 같은 모습이어서 잘 모르겠단 말이지.”


에단은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머뭇머뭇 궁금한 걸 물어보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에단이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는 밖의 세상을 궁금해 하는 귀히 자란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이참에 공유하지. 조사 결과 그 집도, 마법 인형들도 평범치가 않았다.”


조용히 서있던 녹티스가 그 뒤를 이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집은 최소 환영 마법과 복원마법, 방어마법이 다중으로 걸려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슬쩍 조사해보니 아니었다. 훨씬 더 많고 복잡한 마법이 걸려있더군. 나로서는 전부 다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더 필요해.”


저택에 들어간 순간부터 녹티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도 모르게 저택 곳곳에 보이는 마법을 해석하기 시작했지만 파면 팔수록 그가 알지 못했던 영지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마 그녀도 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강도들은 그 저택 마당조차 들어설 수 없었을 테니. 또 그 마법 인형들이 움직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인형들이 소모하는 에테르를 전부 그녀가 공급하고 있는 것이라면, 믿을 수 없는 양의 에테르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얼마나 되는 것이지?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에단의 물음에 녹티스는 잠시 고민하다 가볍게 말했다.


적어도 나의 세배는 돼야 하겠지.”


에엑!?”


녹티스는 잭의 일행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흑마도사였다. 그만큼 높은 실력과 많은 양의 에테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녹티스의 세배라니. 믿을 수 없는 양이었다.


그저 계산일뿐이다. 나라면 그렇게 효율이 떨어지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에테르를 공급한다면, 이라는 가정이다. 아마도 그 저택에 비밀이 숨어있겠지.”


그렇군. 만약 그녀가 많은 양의 에테르를 가지고 있다면 그 녀석들의 상태도 이해가 되는군.”


아마도 감정의 고양 상태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에테르를 사용해 신체를 강화했으리라 생각한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았을 때 그녀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용기도 있고, 그만큼 겁도 많은 사람.”


리리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식사를 함께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대하는 행동과 배려하는 마음. 표정이나 몸짓 이모저모에서 느껴지는 작은 동물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 

그들은 리리아와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이 외로워보였어요.”


그녀는 아마 모르고 있었겠지만 리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특정한 주제에 관해 말할 때 진한 그리움과 쓸쓸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요? 아뇨. 지금은 저 혼자 살고 있어요. 원래는 저 방이 제 방이에요.’


아마도, 다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을까. 리리아에게 대답하는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그 표정의 뒤에 흐르는 애수를 리리아는 본 듯 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거기에 행동을 보면 동쪽 대륙에서 온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었어요.”


인사할 때 허리를 굽혀 인사하던 모습과 식기에 젓가락이 있는 것을 생각하던 리리아가 잭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죠? . 혹시 무언가를 본건가요?”


다른 일행들의 시선이 잭에게 집중되자 잭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잭의 과거를 보는 초월하는 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초월하는 힘이 보여준 과거와 동료들의 의견, 그리고 잭 자신이 직접 겪어본 그녀의 모습.


설원을 봤어.”


찾아다니던 존재가 있었다. 그녀를 찾아 달라 부탁하던 한 소녀가 있었다.


설원에서 싸우고 있던 모험가들과 베헤모스. 그리고 떨어지던 운석.”


확신할 수 없었다. 모았던 정보와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할로네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봤어.”


그렇지만 기대는 해도 좋지 않을까.

 

믿을 수 없다는 경악에 찬 소리. 잭은 씨익 웃으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어쩌면 우리가 받은 그 의뢰에 대한 실마리를 드디어 잡은 것 같아.”


동료들과 마주하는 잭의 눈은 새로운 만남을 예기하며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1. 시작된 여정 End

0
0
  • '광명의 시작' 업데이트 기념 이벤트
  • '광명의 시작' 업데이트 기념 신규 상품 출시
  • 가맹 PC방 버닝 이벤트
  • [35] 별의 노래
  • 무료 플레이 혜택
  • GM노트 186화
  • V6.5 업데이트 노트
  • 샬레이안 마법대학 게임학부 7화
  • 못다 한 이야기: 삭월편 4화
  • 내 정보 업데이트 이벤트
  • 모험가 성장 지원
  • 우대 서버 혜택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