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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승리호'

카르테노 전투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서야 끝이 났다. 달의 위성 '달라가브'의 파편이 무수히 쏟아진 평원은 무참히 망가져 마치 '일곱 지옥'이 땅 위에 나타난 듯한 모습이었다. '카느 에 님!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카느 에 센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진흙투성이가 된 장비를 몸에 걸친 쌍사당 병사가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마도 아머 잔해 밑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카느 에가 다가가서 살펴보니 분명 검은 잔해 밑에서 어렴풋한 소리가 들렸다. 다섯 명쯤 되는 병사들이 모여 다 같이 힘을 합쳐 조심스레 잔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밑에서 발견된 것은 쌍사당 병사가 아니었고, 에오르제아 동맹군 병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마도 아머처럼 검은색 장비를 입은 갈레말 제국군 병사였다. 아직 소년 티가 나는 어린 적군 병사가 배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종족은 휴런족이었다. 아마도 식민지에서 징병 당해 왔을 한 젊은이가 에오르제아라는 먼 이국 땅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지만…… 여차하면 단칼에……' 병사들 속에서 몸집 큰 엘레젠족 병사가 걸어 나오더니 비취색 칼을 뽑아 들었다. '그만두세요. 제국 병사라 해도 지금은 그저 다친 사람일 뿐입니다. 저항하지도 못하는 자를 해쳐서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용납하지 않겠어요' 앞으로 나섰던 병사는 뭔가 말을 하려다 그대로 물러났다. 카느 에는 규화목으로 만든 자신의 지팡이 '클라우스트룸'을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맑은 생명의 바람이여, 이 자의 상처를 치유하라……' 속삭이듯 주문을 외우자 부드러운 바람이 일더니 땅에 누워있던 젊은이의 몸을 에워쌌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풀어지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이제 목숨은 건졌을 겁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곧바로 후송해서 안정을 취하게 하세요' '옙…… 알겠습니다!' 쌍사당 병사들은 힘없이 늘어져있는 젊은이를 들쳐 업고 갔다. 카느 에는 그 뒤로도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몇 명이나 더 구했다. 하지만 찾아낸 전사자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고도 제7재해를 막아내지 못하다니……』 카느 에는 숲의 도시 '그리다니아'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을 전쟁터로 보냈다. 그것은 '제7재해'라는 재앙을 미리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달라가브는 떨어졌고, 그 안에서 나타난 '검은 야만신'이 세상을 불태웠다. 결국 제7재해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카르테노에 남아 생존자를 찾으며 구조 활동을 지휘하던 카느 에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정말 옳았었는지 계속해서 스스로 되물었다. 물론 고향 '그리다니아'의 상황도 걱정이 됐으나, 그곳에는 '삼중의 환술황'인 여동생, 남동생뿐만 아니라 뛰어난 도사들이 남아있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전쟁터에 계속 남아 전투를 이끈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잠도 거른 채 쉬지 않고 구조 활동을 이어가며 수많은 생명들을 구해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발견되는 생존자의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던 장병들 사이에서도 점점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장병들 중에는 고향에 가족을 두고 온 자도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어찌 걱정하지 말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더는 힘들겠어……』

그렇게 생각한 카느 에는 고위 장교를 모아 부대를 철수시킬 준비를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혼자 또다시 전투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향했다. 찾아야 할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줄곧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구조 활동 탓에 찾아 나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예전 기억과 에테르의 흔적을 더듬어 가며 엉망이 된 땅을 헤매고 다니길 몇 시간…… 마침내 찾아냈다. 『아아, 다행이야……』 식은 잿빛처럼 칙칙한 바위 그림자 틈에 부러지고 깨진 지팡이가 놓여있었다. '투프시마티'였다. 카느 에는 이 지팡이에 깃든 힘의 유래를 알지 못했으나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마법적 감성을 지닌 '뿔의 아이'였기 때문에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현자 루이수아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 지금, 앞으로 그의 뜻을 이어갈 자에게 그의 유품만이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오직 그 생각 하나로 찾고 있던 지팡이를 철수 직전에 드디어 찾게 해준 행운에게 감사했다. 카느 에는 현자 루이수아가 자신을 이끌어주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며칠 후 '그리다니아'로 돌아온 카느 에는 복구 활동을 돕고 있던 샬레이안의 현자들과 다시 만났다. 휴런족 '이다'와 라라펠족 '파파리모', 이 두 사람은 루이수아가 만든 조직 '구세시맹'의 일원이었다. '두 분께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내민 것은 목수 길드에서 만든 자단나무 상자에 담긴 '투프시마티'였다. '루이수아 영감님……' 부러진 지팡이를 보고 그제야 스승으로 따르던 사람의 죽음을 실감한 것인지 두 사람은 하염없이 울었다. 평소 자기감정에 솔직한 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독설가 파파리모까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커다란 눈물방울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잠시 후 이성을 되찾은 파파리모가 '투프시마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대에 조각된 영험한 '석판' 두 장과 샬레이안에서 보물로 전해 내려온 '뿔피리'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 '투프시마티'가 바로 '신을 불러내는 비술'을 실현할 열쇠라고 했다는 현자 루이수아의 말도 함께 전해주었다. '부서지긴 했지만 이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어차피 루이수아 영감님 말고 투프시마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신을 불러내는 열쇠가 될 물건이 사악한 자들 손에 넘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고맙습니다, 카느 에 님' '이제 정말 새 출발 할 수 있겠군요……. 저희가 이번에 새로운 조직을 세우기로 했거든요' 두 현자는 바로 얼마 전 결정되었다는 계획을 들려주었다. 신비한 힘을 가진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열두 기적 조사회'와 샬레이안의 현자들로 이루어진 '구세시맹', 이 두 조직을 하나로 합쳐 새 조직을 세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현자 루이수아가 이루려 했던 '에오르제아 구원'을 위해, 그리고 야만신을 비롯하여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위대한 현자 루이수아는 카르테노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 에오르제아에 남아 있다. 카느 에는 그들이 있다는 것을 든든하게 여기며 앞으로 전진하려는 모습을 본받으리라 다짐했다.

그 뒤로 5년이 지난 지금도 카느 에는 스스로 되묻곤 한다. 카르테노 땅에서 죽어간 자들에게, 현자 루이수아에게 떳떳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카느 에 님, 정령 평의회에 가실 시간입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카느 에 센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새하얀 가죽갑옷을 입은 휴런족 젊은이 한 명이 서 있었다. 재해 후에 만들어진 환술황 직속 위병대 '흰 뱀의 수호자'에 속한 자였다. 그때 마도 아머 밑에서 구해낸 소년이 이제는 어엿한 젊은이로 성장하여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카느 에를 지키게 된 것이다. '자, 그러면 말없는 선인의 좌탁으로 가볼까요' 설령 적으로 만났더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 현자 루이수아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맡긴 '새로 태어날' 희망을 이루기 위해 떠나간 벗에게 기도를 올리며, 찾아온 벗과 함께 걸어가리라. 카느 에 센나는 햇살 머금은 작은 숲길을 지나 정무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