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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14 못다 한 이야기

칠흑의 반역자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미처 말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야기들을 공개합니다!

서막에 노래하다

역사라는 것을 둘러보면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가를 세운 누군가. 역사적인 발견을 한 누군가. 곤경에 빠진 민중을 구한 누군가――그렇게 밤하늘에서 총총히 빛나는 별과 같은 사람들을 위인이나 천재 혹은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겠지. 나는 영웅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회장’이다. 18대째 내려온 갈론드 아이언웍스의 18번째 회장. 초대 회장을 비롯한 몇 명은 운 좋게도 살아 있을 때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짧게는 취임 후 3일만에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그렇게 약 200년…… 이 자리에 앉았던 18명은 후세에 전해진다 해도 ‘초대 회장 시드와 그의 뒤를 이은 회장들’ 정도로 기록되는 게 고작일 것이다. 우리가 완수하려고 하는 것이 형체가 없는 위업이라면 더욱. 이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는다. 영웅도 그 무엇도 아니기에. 그래도 우리들은 당당히 살고 있다. 은빛눈물 호수에 우뚝 솟은 ‘묵약의 탑’. 거창한 이름이지만 탑처럼 보이는 그 거대전함은 도굴꾼들이 장갑이란 장갑은 모조리 떼어간 탓에 이제는 고목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자못 폐허와도 같은 그 분위기는 은신처로 삼기에 매우 적절했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적이 습격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겨진 탑의 외관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호스……아니 ‘용’은 그 영웅과 인연이 있는 존재였다고 전해지니 우리들이 정착하기에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그날 밤, 그 은신처 중앙에 있는 집회장에는 갈론드 아이언웍스 사의 사원들 및 협력자들이 푹 잠들어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한밤중까지 작업장인 크리스탈 타워에 있었지만, 오늘밤엔 그럴 필요가 없다. 준비는 이미 다 마쳤고 내일 아침 저 탑은 과거의 제1세계로 출발할 예정이다. 이를 기념하면서 열린 조촐한 연회도 이미 한참 전에 끝났지만 끝내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코를 골고 있다. 하나 남은 모닥불은 그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붉게 타고 있었다. 잠들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건 나와 또 다른 한 명뿐이다.
“이봐, 그라하……” 이름을 부르니 불꽃처럼 붉은 눈이 이쪽을 향했다. 그는 그 붉은색 때문에――알라그 황족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이 시대까지 잠들어 있던 그는, 내일 다른 시대로 떠난다. 이번에는 세계마저 뛰어넘어, 희망을, 그리고 다른 미래를 전하기 위해. 그 무거운 책임을……우리가 그에게 맡긴 사명의 무게를 생각하면 언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친다. 하지만 각오는 이미 서로 다진 터였다.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몇 마디를 도로 삼키고, 대신에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던 이야기를 오늘은 기필코 물어보기로 한다. “자네는…… 어째서 크리스탈 타워와 함께 잠들었지?” 그렇게 묻자 그는 의외라는 듯 눈을 깜박거린 뒤에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그걸 묻는 거야?” “마지막 기회니까. 그야 물론 자네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었을 거고, 올바른 선택이었다고도 생각해. 우리들의 꿈이 이어진 것도 그 덕분이고. ……하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아니었을 텐데.” 예전부터 그에게 갖고 있던 의문을 솔직히 털어놓자, 그도 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는 듯했다. “글쎄……”라고 중얼거리면서 시선을 불꽃으로 돌렸다. 대답을 고르는지 꼬리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끈기 있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니 이내 그가 얼굴에 미소를 띤다. 가늘어진 눈은 불꽃의 빛 너머에 있는 좀 더 눈부신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영향을 받은 거야, 그 열의와 빛에.” “……뭐라고?” “시드와 네로, 그리고 웨지와 초대 빅스. 모두 머리도 실력도 기가 막히게 좋아서――” 자신이 지식을 하나 말하면 그들은 순식간에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곁에서 조사를 지휘하던 람브루스 역시 현자로서는 대선배다. 감시자라는 큰 임무를 맡아 들뜬 젊은이를 내심 흐뭇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인정하고 의지해줘서 기뻤다. 도중에 조사에 합류한 도가와 우네는 놀랍게도, 알라그 시대에 태어난 클론이라지 뭔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서도, 오로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 했다. 그런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건 고대 알라그 문명의 지혜와 어둠. 알라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 전설의 시황제 잔데, 끝내는 세계를 건너 대요마와 결전을 치르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노아의 길을 개척한 사람―― 제8재해의 세상에도 이름을 남긴 바로 그 영웅이다. “정말 대단하다니까. 이야기가 갑자기 현실이 된 것 같아서…… 정신없이 빠져들었지. 그러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겠어?”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지만……두려움은 없었나?” “그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라하 티아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광장 중앙의 천장은 비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보강되어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구멍투성이라 검게 튀어나온 뼈대 사이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보였다. 그 빛을 눈에 담고 그리움을 가득 드러내며, 자랑스럽게 그가 말한다. “어떤 운명이든 도전할 수 있겠다. 그런 믿음이 생겼어. 그 녀석들과 함께 달리고 있을 때.” 망설임 없는 옆얼굴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 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영웅이란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의 선조도, 초대 회장도, 이 계획에 관여해온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접하고 가슴을 애태웠다. 과연 본인에게 자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발걸음은 한때 함께 걸었던 누군가에게 분명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앞으로, 미래로, 희망으로 나아갈 용기를. 그것이 내일 아침, 그 누구도 아닌 내 시대에서 결실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들이마시니, 등이 곧게 펴졌다. “……전송은 반드시 성공시킬게.”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내미니 내 것에 비해 상당히 작은 주먹이, 그러나 힘을 가득 실어 부딪혀온다. “그래. 그다음은 내게 맡겨.” 설령 이 약속의 끝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하나라도 더 많은 행복이 생기길 기원하며, 다음 날 아침, 크리스탈 타워의 전송 계획이 실행되었다. 바라건대, 두 세계가 모두 구원받기를.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또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결말이 되기를. 동료들의 진심 어린 배웅 속에, 아름다운 수정탑은 새벽하늘에 잔광을 흩날리고는 사라졌다. 모르도나의 호수에서 동료들과 얼마나 서 있었을까. 크리스탈 타워가 전송되었을 때는 다소 어둑했던 하늘에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각자 그저 사라진 탑이 있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획은 시간과 차원 너머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탑이 사라진 모르도나의 풍경처럼, 내 안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그로 인한 적막감이 그 구멍을 채운다. 200년에 걸친 꿈의 끝은 너무나도 조용해서, 바람과 호수에 이는 미세한 소리만이 귀에 남았다. “……안 사라지네, 우리들은.” 동료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정적을 깬다. 역사를 바꾸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을 성립시킨 순간에 이 역사가 통째로 ‘없었던 일’이 될 가능성조차 있었다. 하지만 탑을 보낸 후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여기 존재하고 있다. 그라하 티아가 제1세계의 구제에 실패하면 애초에 역사가 바뀌지 않을 테지만……기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믿고 싶다. 그는 계획을 완수하고 제8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역사를 성립시켰고,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도 이대로 계속된다……고. 동료들도 같은 생각에 이르렀으리라. 서로를 바라보며 이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웃기 시작했다. 변한 건 없다. 아무것도. 이 진흙탕 같은 세계에서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당연하고도 뻔히 알고 있던 결말에 이른 것이 우스웠고―― 그리고 묘하게 행복했다. 그렇게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크리스탈 타워. 시간의 날개. 차원의 틈을 뛰어넘은 관측자. 그 많은 모험으로 이어진 이 역사에는 아직 눈을 떠야 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주변으로 시선을 옮긴다. 동료 중 한 명이 “저기야!”라며 은신처 쪽을 가리켰다. 뒤돌아보고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폐허가 된 전함에 남아 있던 녹슨 장갑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갑 몇 개가 벗겨지더니 호수에 그대로 떨어져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킨다. 원래부터 무너질 것 같은 폐허이긴 했지만, 드디어 한계가 온 것일까. ――아니다. 외관을 휘감고 있던 ‘그것’이 마치 되살아난 듯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환룡……미드가르드오름……!?” 다시 하늘까지 뒤흔들 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의 포효였다. 이윽고 폐전함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거대한 용은 하늘을 빙그르르 한 바퀴 돌더니 하필이면 이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동료들과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 용이 죽은 건 아니라는 사실은, 초대 회장이 남긴 차원의 틈에 관한 조사 기록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진짜로 눈을 뜨다니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혹시 크리스탈 타워를 전송한 게 그의 잠을 방해한 건 아닐까 생각하니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우리를 둘러보던 미드가르드오름이 낮고 조용히 소리를 냈다. “그대들, 작은 인간이여…… 조금 전 수정탑을 차원의 너머로 보냈구나.” “아, 그래…… 미안, 그것 때문에 잠을 깬 건가……?” 용은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쥐고 있던 주먹에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괜찮아, 그는 적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 되뇌어도 본능적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드래곤족이란 이런 건가, 실감하면서 대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선잠을 자면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들 인간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도 말이다.” 태초의 용은 담담하게 말하더니 다시 한번 우리를 둘러보았다. “나는 전쟁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대들이 한 일이 용감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인간의 일생은 너무나도 짧다. 하물며 그 마음의 변화는 우리 용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없어질 꿈이라고 생각했으나……그대들은 해냈다.” 그리고, 라고 말하며 그 거대한 눈이 동료 중 한 사람을 담았다. 젊은 그녀는 양손으로 검은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나의 선조가 만들었다는 오메가의 모형이다. 오랫동안 갈론드 아이언웍스의 일원으로 사랑을 받아왔으나, 아무래도 긴 세월 탓에 여기저기 고장 난 곳이 많았다. 배터리를 갈아도 금방 멈추고, 센서에도 이상이 생겼는지 자주 은신처의 벽에―― 그야말로 미드가르드오름의 몸통에 쿵쿵 부딪히곤 했다. 완벽하게 수리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만드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즈음엔 이미 탑의 전송 계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점이라 일단 계획을 끝낼 때까지는 그대로 두자고…… 다 같이 정했었다. 그 모형을 본 미드가르드오름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용의 표정은 전혀 모르지만, 기분 탓인지 왠지 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달아 나도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그 광경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저 온몸에 다시 피가 돌기 시작했고 그것이 엄청나게 뜨겁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어젯밤 들었던 말이 울린다. “영향을 받은 거야”라. 그래, 그건 이런 감각이었을까. 무언가 웅장한 흐름에 몸을 던지는 듯한, 모든 일의 시작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약간의 불안함과 흥분. 그 감각에 떠밀리듯 조금 전까지 두려워하던 용을 똑바로 응시한다. 용도 역시 비늘을 아침 햇빛에 반짝이며 이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인간이여, 그대들의 꿈은 여기서 끝인가?” “……아니, 우리는.” 제8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그 영웅이 살아 있는 미래를 성립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갈고 닦은 기술은 분명히 이 손에 남아 있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키워온 그것은 이번에야말로 세계를 구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구하고 싶다, 이 세계를.” 그 대답에, 역시 미드가르드오름이 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인간의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이 별에 사는 자로서 그대들의 소원에 힘을 빌려주도록 하지. 나를 단단한 성벽으로 삼아 도시를 짓고, 나아가 지혜를 쌓도록 해라. 그리하면 언젠가는 올 것이다――새로운 평화의 시대, 인간이 성력이라 부르는 것이.” 용의 말에 수긍하면 우리의 다음 전투가 시작된다. 시간과 세계를 건넌 그 청년도 그의 전장에서 분투하고 있을 터. 그 결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서로의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우리는 분명 똑같이, 저 너머의 별을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