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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 드리프터 1 - 빛둠도 피할 수 없는 회빙환

번호 1920
톤베리 | 창술사 | Lv.80
21-04-23 16:53 조회 5894


*이게... 뭘까요.

*일단 기본적으로 파이널판타지14 한국 서버의 진도를 다 빼신 분들을 예상 독자로 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제6성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신생 이전의 이야기이므로 해당 설정을 모르시는 분들은 미리 알아보고 감상하시면 더 재밌...재밌으려나

*배경이 배경이니 만큼, 유혈 표현이라든가 살해 등이 나옵니다. 주의!










Iffy/DRIFTER

00 빛둠도 피할 수 없는 회빙환








제 6성력 1572년 모르도나 동부 카르테노 평원.


중요한 전투를 앞둔 여명의 때, 제VII군단의 진영에서는 사병과 장교가 뒤섞인 그 속에서 갑작스러운 데다 격식도 없으며 여러 가지 절차도 생략된 군사재판이 이뤄지고 있었다. 군사들 중 반은 밤을 지새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고 그 나머지 반은 잠이 채 가시지 않은 멍한 눈을 하고 그 중심의 광경을 지켜본다.


결박당해 맨 땅에 무릎이 꿇려진 자는 다섯. 루가딘 남성 하나. 엘레젠 여성 하나. 휴런 남녀가 둘. 그리고 그들을 지키려는 듯이 맨 앞에서 당치도 않게 장교들을 노려보는 미코테 여성이 하나. 탈영 미수 사건의 주동자다.


철썩. 당연히 그 미코테 여성의 뺨은 다른 장교에 의해 후려쳐진다.. 백인대장은 자신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행위 자체도 불쾌하거니와 모양빠지는 짓이다.


"중요한 전투 직전 탈영을 꾀하다니, 괘씸하군. 제국의 병사라는 자들이 말이다."


백인대장은 목소리를 낮게 깔게 말하며 그 앞에 섰다. 뺨을 맞고도 미코테 병사는 주눅 들지 않고 백인대장을 형형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차피 다 죽을 거야! 넬 군단장도 이미 죽었어!"


미코테 병사의 목소리는 충분히 컸다. 아니, 너무 컸다. 우렁찼다. 


"젠장 빛전은 선택받기라도 했지, 당신들은 살아남아도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내 말이 틀려!?"


그 목소리는 고함을 내치느라 끝이 갈라졌다. 켁켁, 기침을 하고도 말을 이어간다. 입을 틀어막으려 드는 병사나 장교의 손을 물거나 정강이를 걷어차며 말을 이어간다. 말이라기보단 외침-비명이다.


"명령을 내린 상관이 연락이 닿지 않잖아! 제 XIV군단에 도움을 요청하든 해! 퇴각시켜달라고 하란 말이야! 이 싸움에 무슨 의미가 있어?!"


더 군기를 흩트리게 둘 수는 없다. 이 파렴치한 놈들을 모든 군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로 처형하자는 멍청한 의견을 내놓은 자가 누구였더라? 백인대장은 어금니를 악물고 그대로 자신의 총검을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헛소리를 내뱉던 병사의 광기에 가까웠던 빛이 흐려지고 그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대지는 검은 피를 게걸스럽게 삼켜간다.


총성이 이어지고 나머지 다른 탈영 미수범들도 즉결처분을 받아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백인대장은 갑갑한 제식 투구를 평소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자신의 관자놀이에 흐르는 식은땀을 숨겨주는 것에 감사함 까지 느끼고 있었다.


넬 반 다르누스 군단장님이 전사하셨다고? 왜? 언제? 그분이 어떻게? 그게 사실이라면 왜 제XIV군단 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지? 철수 명령이나 지원이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쪽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은 건가? 아니지, 아니지. 지금 상공에는 제 XIV 군단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래, 그래. 이건... 이놈들은 간악한 야만족 무리의 앞잡이놈들이었던거야. 그럼 이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 당황할 것 없어, 당황할 것 없어...


백인대장이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데엔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야만족 앞잡이에 홀려 미친 사병들이 벌인 일에 불과하다. 백인대장은 목까지 욕설이 치미는 것을 참았다. 추한 꼴을 보여선 안된다. 이 병사가 늘어놓은 헛소리에 웅성거리는 사병들에게 크게 호통을 치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주 알데나드 소대륙의 패권을 가를 카르테노 평원의 전투의 때가 다가온다... 적어도 백인대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상, 기상. 막사 내 병사들은 모두 기상하시지 말임다!"


의욕에 찬, 신경을 거스르는 외침과 함께 위에에엥~ 하는 알람이 울렸다. 민서는 이런 알람 소리를 설정해둔 적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대체 잠을 어떻게 잔 건지 온몸이 쑤셔왔다. 잠들기 전에 방안을 붕붕 뛰어다닌 게 문제였나? 어깨, 팔꿈치, 배, 정강이, 허벅지, 꼬리까지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민서는 기지개를 쫘악 폈다. 꼬리도 자연스럽게 쫘악 펴졌다.


... 꼬리?


"흐갸아악!"


옆자리의 팔다리가 길쭉한 여자가 짜증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민서를 밀쳐냈다. 꼬리? 아니 꼬리? 민서는 머리 위의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잠깐, 귀가 쫑긋 선다고? 민서는 자기 몸에 뭐가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마냥 자기 머리를 텁 텁 집어댔다.  정수리 양옆으로 부드럽지만 분명히 힘있게 서 있는 세모난 귀가 만져졌다. 긴장감이나 조심성 없는 길고양이들에게서 가끔 느낄 수 있는 그 감촉이다.


"미코테..."


민서는 작게 중얼거리며 주변에 있을 만한 거울을 찾았다. 보통 침대 맡 협탁에 두는데 여긴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잠든 사이 옮겨진 것도 모자라서 몸도 바뀌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짜증스럽게 자신을 밀쳐냈던 여성이 손거울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냅다 뺐...어오지는 않고 양해를 구한 뒤 받아냈다. 민서는 이성을 붙잡으려 애쓰며 심호흡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머리가 이리저리 삐친 민서의 모습이 당연히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녹색 눈을 가진, 뺨 문신이 있는 매끈한 구릿빛 피부의... 정확히 4번 얼굴 여코테였다. 심지어 자신이 주로 하던 커마도 아니다. 민서는 1번뿔 남우라 유저였기에... 아니, 지금으로선 다행인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이 상황이 민서가 이해하는 그것이 맞는다면... 남자의 몸이라면 아무래도 불편했을 테니까.


민서는 차분하게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나는 어제 평범하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제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부대원들 위주로 구성된 지인팟 전원이 드디어 절테마를 성불한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현역 극만신 가는 것도 두려워하던 극 라이트 유져였던 민서였지만, 여차여차하다 보니 절 알테마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사실 부대원들이 다 같이 하자니까 반, 영식도 해봤는데 절도 어디 한번! 하는 만용 반으로 뛰어든 절은 만만치 않았다. 공팟 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기피하다가 메인탱인 부대장 언니따라 갔다가 얼레벌레 성불팟이 모여서 성불을 당하고 공팟연습을 하면서 힐택틱이 안정되어가니 스트레스에 상응하는 보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절 파티가 그저 순탄하게 흘러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까요꾸 나까요꾸 하느라 분위기가 느긋해져서 한번 작은 논쟁이 오간 적도 있었고 피드백 과정 중에 마음에 상해버린 사람도 있었지만 언제나 답은 대화에 있었다. 서로 소통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해결책은 찾을 수 있었고 직장인과 대학생이 뒤섞인 지인 절 파티는 3개월 만에 전원 성불을 했다.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다.


동시에 어제는 마침 민서가 병원 일을 관둔 날이기도 했다. 정신과로 상담을 위주로 하는 곳이라 다른 의료업계에 비하면 업무부담은 크지 않았다. 3년 정도 간호조무사로 데스크에서 꾸준히 일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신경통 때문에 근무를 계속하기가 힘들어져 두 달 전 원장님과 상의했다. 마음씨 좋은 원장님은 퇴사 권고 처리를 해주셔서 실업급여도 타 먹을 수 있게 해주셨다. 민서는 자신이 인복 하난 타고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괜히 했다.


그렇게 백수가 된 첫날 파티원 전원이 성불까지 하고 맥주를 까려니까, 마침 한국 서버 레터라이브 날이었다! 기분 좋게 새 업데이트 소식들을 듣고 있자니 잠깐은 이 백수, 아니지, 갓수 라이프를 즐겨보자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민서는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특성화고 졸업하고 학교-기업 간 연계 취업한 곳에선 온갖 개고생만 다 하고 관둬버렸고, 직후 알바를 하며 간호조무사 공부를 했다. 그리고 간호조무사가 되고 이번이 두 번째 병원. 그 동안 단 한 번도 한 달 이상 쉬지를 못했다. 이번엔 좀 다르게 보내보자고 민서는 생각했다.


그런 상념에 젖어있다 보니 어느새 레터라이브의 신규 업뎃 소개는 끝나고, 막간 타임이 되어 5.4 트레일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인 중엔 글섭 유저도 있지만 다들 스포일러는 엄금해주는 좋은 지인들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민서는 처음 보는 그 트레일러를 시청했다.


글로벌 서버 쪽의 레터라이브에서 공개된 효월 트레일러를 본 게 얼마 전인데, 한국 서버의 레터라이브에서 한국어로 더빙된 5.4 또 하나의 미래 트레일러까지 봐버리니 이른바 가슴이 웅장... 가슴이 벅차올라서 말 그대로 집안에서 방방 뛰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부대 단톡방이라든가, 친목 단톡방에서 그 벅차오름을 서로 공감해주고 수다를 떨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대에서 직구한 머윗 인형에 다리 올리고 잠자리에 든 것이 마지막 기억인데. 그랬을 터인데.


눈을 떠보니 딱딱한 바닥에 낯선 천장. 퀴퀴한 냄새...


아니, 아니... 


나 빛의 전사인가? 이 시점이면 들으라든가, 느끼라든가, 생각하라는 말을 하X의 X직이는 성의 소피가 속삭여줄 타이밍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민서는 눈을 감고 자신의 안으로 침잠하듯이 집중해보았다.


...


...


전혀 안 들려온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민서의 귀에는 환복을 위해 부스럭 거리는 다른 병사들의 소음이 들려오는 게 전부였다. 한숨을 쉬며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생활관... 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텐트에 가까운 이 막사는 열악하다. 에오르제아니까 당연한가? 행군 중인 걸까?


그보다 병사라고 했었다. 불멸대? 쌍사당? 흑와단? 게임 유저로서는 흑화단이 룩이 이뻐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살아갈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니 대치해야 할 야만족이 적은 불멸대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멸대라기엔 걸치는 게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민서의 눈엔 못알아볼 수가 없는 문양이 두 눈에 들어왔다.


마름모꼴 사슬 세 개.


그런 휘장이, 다른 사병이 걸치는 상의 어깨에 붙어 있었다. 민서는 허겁지겁 주변을 살펴 제 근처의 옷-군복도 살펴보았다. 틀림없다.. 마름모꼴 사슬이 세 개. 중앙은 붉은 색. 이건... 갈레말 제국의 상징이다.


모를 수가 없는 게... 파이널판타지14의 캐릭터들 중 민서의 최애캐는 가이우스다. 가이우스 반 바일사르. CP를 파거나 드림을 파는 정도는 아니지만 남의 연성이 있으면 일단 주워 먹고 좋아하는 정도의 가이우스 오타쿠, 그게 민서였다. 그런 민서가 이걸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다.


아무리 다시 봐도 갈레말 제국의 그것이다... 민서는 멍한 기분에 자신의 양 뺨을 조금 아프게 챡챡 두드렸다. 꿈은 아니다. 아무래도 꿈이 아니다. 그... 말로만 듣던 빙의? 인 모양이다. 회빙환 로판은 이웃 장르라서 대충 클리셰밖에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민서는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귀와 꼬리의 존재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저기? 리소토. 너 지금 되게 이상한 거 알지."


"내 이름이 리소토야?"


민서는 반사적으로 말했다가 헛숨을 삼키며 자신의 입을 가렸다. 처음부터 이런 수상한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게 클리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엘레젠 여성은 민서를 데리고 막사 구석진 곳으로 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너 솜누스의 향이라도 하니...? 미쳤어...? 그런 거 손댈 애로는 안보였는데."


서차게 고개를 저은 민서는 무엇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이 엘레젠 여성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걸까? 대하는 태도를 봐선 데면데면한 사이같지는 않았다.


"그... 진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지금 뭐 하는 거야?"


"...사흘 뒤 있을 카르테노 평원 전투를 앞두고 병기 이송하느라 개고생하는 거잖아."


"카... 뭐?"


민서는 그냥 게이머가 아니라, 이른바 "덕질"을 하는 다른 의미로 하드한 유저였기 때문에 그 단어를 놓칠 수가 없었다. 카르테노 평원 전투. 카르테노. 창천 세기말에 시작한 유저인 민서는 직접 대미궁 바하무트를 현역으로 클리어 하진 못했지만 오열하면서 나는 알리제의 검이야를 사흘 정도 중얼거렸던... 아니, 감회에 빠질 때가 아니다. 그 전투라면... 아니, 더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 민서는 눈앞의 엘레젠 여성의 양팔을 꽉 붙잡았다.


"지금이 몇 년도야?"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제국력 51년."


".. 아니, 아니, 아니지. 몇 성력이야?"


"너 진짜 정신 나갔어? 무슨 성력 타령이야..."


엘레젠 여성은 정말 얼탱이 터진다는 표정으로 민서를 보다가 더욱 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다시피 말했다.


"... 제6성력 천오백칠십...이년일걸."


제6성력 1572년?


망했다.


이건 진짜로 망했다.


"으악! 왜 하필 제국병인데!?!??! 그것도 제6성력?! 카르테노 전투 직전?!"


파이널판타지14 한국 서비스 유저 김민서는, 5.4 트레일러 보고 즐겁게 잠든 다음날 제6성력 카르테노 전투를 앞둔 갈레말 제국 넬 반 다르누스 휘하 제 VII군단의 병사 리소토가 되고 만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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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나 (21-04-24 10:11)
카벙클 | 비술사 | Lv.80
잘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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