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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14 못다 한 이야기

칠흑의 반역자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미처 말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야기들을 공개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

아주 멀고 먼 옛날. 아직 기도를 올릴 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이 신이었을 무렵. 하나의 별에는 단 하나의 세계만이 있었고, 그것과 겹쳐지듯이 ‘생명’이 떠도는 영역이 있었다. 에테르계라 불리는 그 영역은 시대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그들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영역, 죽은 자가 돌아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명계’라고도 불렸다. 명계는 신, 즉 인간들에게 아주 가까운 존재였다. 물이 땅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바다에서 구름이 생기고 그것이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듯이 생명의 순환을 담당하는 장소 중 하나로,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지배권 내에 있었냐고 묻는다면 모두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들조차 지혜를 쓰지 않으면 명계를 들여다볼 수 없었고, 거기서 힘의 일부를 끄집어낼 수는 있어도 모든 흐름을 제어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인간 중에 아주 드물게, 명계의 사랑을 받은 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날도 수도 아모로트에는 평화로운 밤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부드러운 불빛이 켜지고, 로브를 입은 시민들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큰길을 오가고 있다. 너무 어둡지 않아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한 너무 밝지 않아 잠자리에 들기도 좋은 이 도시의 밤을,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보내고 있으리라. 그날 밤, 마을 한 모퉁이에 지어진 공원의 구석에서 한 남자가 잔디에 누워 있었다.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지만, 얼굴의 절반은 이 세상 단 하나뿐인 형태의 붉은 가면으로 덮여 있다.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는지 거의 다 벗겨진 후드에서 흰 머리칼이 보인다. 가면 그림자에 가려진 두 눈은 그저 멍하니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언뜻 별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만물이 가진 에테르가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땅에도 흐르고 하늘에도 올라, 별을 구석구석까지 밝히고 있다.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끝낸 생명이, 바람을 타고 떠돌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건너편―― 명계로 떨어진다. 의식만 집중하면, 한없이 깊은 곳, 한없이 먼 곳 까지도, 순환하는 생명을 포착할 수 있다. 물질이 갖고 있는 에테르를 볼 수 있는 자는 적지 않지만, 그가 가진 능력만큼 선명하게 먼 곳까지 내다볼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을 것이다. 생명의 중심을 이루는 혼이 저마다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의 눈에는 보였다. 그야말로 명계의 주민이라 비유될 만한 능력이었다. 남자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누군가 잔디를 밟으며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그걸 알면서도――귀찮은 일을 내던져 버리듯 눈을 감는다. 하지만 발소리의 주인은 그의 머리 바로 위까지 오더니, 선 채로 내려다보며 거침없이 말을 걸어 왔다. “여어, 14인 위원회로 취임한 걸 축하해, 하데스. 아니지, 이제는 에메트셀크라 불러야 하나?” 말을 들은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말을 한 남자는, 가면으로 덮여 있지 않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발치에 있는 붉은 가면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자, 내가 졌다는 듯이, 누워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일어선 남자는, 완전히 드러난 흰 머리칼을 칠흑색 후드 안에 다시 넣은 후에야, 지극히 불쾌한 듯한 목소리로 찾아온 자에게 대답한다. “……축하고 뭐고 필요성이 있으니까 받아들인 것뿐이야. 이게 다 네가 위원회 가입을 거절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 휘틀로다이우스.” “아니지, 그런 게 바로 적재적소라는 거야. 보이는 걸 잘 활용할 수 있는 너와는 달리 나는 보고 즐기기만 하니까.” “그런 마음으로 창조물 관리국 국장 자리에 있는 것도 좀 아니라고 보는데. 민중 토론관에서 적임자인지 아닌지 한번 토론해달라고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대꾸하며 가면 아래서 흘끗 노려보지만, 창조물 관리국 국장 휘틀로다이우스는 신경도 안 쓰고 계속해서 밝은 미소를 띠며 웃고 있었다. 검은 로브에 흰색 가면, 별다른 특징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연찮게도 그 또한, 명계를 내다보는 눈을 가진 에메트셀크와 같은 부류였다. 아니, 보는 것만 따지자면 그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그 두 눈동자는 늘 본질과 진실을 간파하고 있다. 그렇기에,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이데아’를 취급하는 창조물 관리국의 업무에 그가 적임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느슨해서야, 라고 늘 생각하고 만다. 에메트셀크는 계속 웃고 있는 휘틀로다이우스에게 “……무슨 일이야”라고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그의 얼굴에 한층 더 웃음이 번졌기에, 에메트셀크는 조금…… 아니 많이, 물어본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취임한 거, 그 사람에게는 이미 보고한 거야?” “……뭐? 왜 굳이 그래야 하지? 당연히 누군가가 보고했을 텐데.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14인 위원회의 인사잖아? 금세 모두 알게 될 거라고.” “그래도 직접 보고하는 게 낫지, 새로운 에메트셀크. 어디 있는지 내가 찾아’봐’ 줄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됐으니까 넌 오늘 일이나 빨리 끝내.” 에메트셀크가 위압적으로 말하자, 휘틀로다이우스는 처음으로 웃음기를 거두더니 일을 못 끝낸 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무언의 질문에 대답한다면 또다시 긁어 부스럼이 될 게 뻔했지만…… 진득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친구를 또 이기지 못하고, 에메트셀크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라하브레아 학술원에서 왔었잖아. 그렇다는 건 심사 의뢰 대상도 거물급이었을 테니 이 시간에 네 일이 끝나 있을 가능성은 낮겠지. 그런데도 굳이 날 찾으러 온 걸 보니 상담인지 부탁인지는 몰라도 또 귀찮은 일을 들고 온 거 아냐?” 휘틀로다이우스는 그의 대답을 음미하듯이 잠시 침묵하더니――이내 어깨가 흔들리도록 웃기 시작한다. “아니, 취임이 결정됐는데도 이런 곳에 누워 있는 친구를 발견한 김에 축하한다는 인사라도 할까 싶어 온 것뿐인데…… 후후……. 그래, 넌 원래 어떤 행동이든 네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지. 응, 그렇지…… 후후후……” 에메트셀크는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딱히 용건이 없다면 가겠다며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당황한 휘틀로다이우스가 그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사실 곤란한 안건이 없는 건 아냐. 괜찮다면 힘을 빌려줘, 위대한 에메트셀크.”
“불사조의 이데아 라고?” 창조물 관리국의 특별층. 평소에는 출입금지인 그 층의 복도를, 에메트셀크와 휘틀로다이우스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휘틀로다이우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 질문에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엄밀하게는 생물이 아니라 새의 형태를 한 마법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거야. 뛰어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행사할 수 있어. 라하브레아 학술원이 혼신의 힘을 쏟은 신작답게 “어떤 시점에서 보더라도” 아름다운 창조물이야.”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말했듯이 그 불사조는 생물로 창조된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형태를 가진 마법으로서 고안된 건데…… 아무튼 봐봐.” 휘틀로다이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막다른 곳에 있는 거대한 문에 손을 갖다 댄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자――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귀가 찢어질 듯한 새의 울음소리에 에메트셀크는 가면 밑의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주저 없이 문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홀을 날아다니는, 불꽃 색을 띠는 아름다운 새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에메트셀크가 시선을 떼지 못한 건, 그 날개가 화려했기 때문은 아니다. 새의 내면에…… 그저 마법일 뿐인 그 안에, 있을 리가 없는 빛을 봤기 때문이다. “혼이 깃들어 있잖아……?” ――인간은 창조마법으로 삼라만상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창조할 수 없는 것이 ‘혼’이었다. 그것은 생물이 물질계의 이치에 따라, 즉 생물로서 모순되지 않은 형태로 만들어질 때, 그 내면에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별이 주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기에, 인간이라 해도 단독으로 창조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생물로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껍데기가 그것과 흡사한 형태라 하더라도 혼을 얻을 수는 없다. 일종의 현상 또는 마법 생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휘틀로다이우스가 새를 올려다 본 채 말한다. “사고가 좀 있었어. 불사조의 이데아를 심사하고 있는 도중에 주변을 떠돌던 혼이 들어가 버린 거야. 저 상태를 보아하니 아마 미련이 남아서 방황하고 있던 혼이었나 봐. 명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치고 있어…….” 에메트셀크도, 울부짖으며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본다. 새는 회관의 두꺼운 벽에 부딪치고는 무참하게 깃털을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치유가 시작되는 탓에, 체력이 떨어지기는커녕 몸을 다시 벽에 부딪치면서, 넘치는 마력을 불꽃으로 바꾸어 마구 뿜어댄다. “……가엽군.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인가. 저렇게까지 된 이상, 이젠 남은 제 목숨에 휘둘리기만 하겠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이 초조하고 슬퍼서 방황하고 상처 입고…… 상처를 입히고.” “오, 넌 이해한 거야? 나하고는 아무래도 인연이 없는 감각이라서.” “이해하긴 뭘 이해해. 그냥 짐작이야. ……그래서 어쩔 셈이지? 라하브레아 학술원의 걸작이라 해도 이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자 휘틀로다이우스가 에메트셀크를 뒤돌아봤다. 그 입가의 웃음을 본 에메트셀크는 자신이 또 괜한 걸 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돌려보내고 싶어도, 불사조잖아.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고통만 주게 될 거야. 그래서 내일 특별히 실력 좋은 마도사를 부를까…… 싶었는데, 네가 해준다면 그래, 더할 나위 없겠는걸.” “……” 에메트셀크는 입을 다물고 어깨를 늘어뜨린다. 원망하듯 옆에 있는 친구를 노려보지만 그의 입가는 여전히 웃음을 참고 있다. 이제 와서 반론은 더 귀찮으니 차라리 이걸로 빚을 빌려준 셈 치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자―― 갑작스레 에메트셀크의 윤곽이 흔들렸다. 저녁 노을에 길게 늘어나는 그림자처럼, 그 몸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다. “이야, 오늘도 압권이네.” 그렇게 말하는 휘틀로다이우스의 눈에는, 명계로부터 친구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렬한 힘의 흐름이 보였다. 그야말로 명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을 것이다. 마도사는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까지 강대한 힘을 다룰 수 있는 자는 14인 위원회 중에서도 있을까 말까 하다. 휘틀로다이우스는 변화를 마친 친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네가 에메트셀크가 된 건 정답이었어. 다시 한번 취임을 축하해.” 에메트셀크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한숨인 것도 같고, 살짝 웃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다시금 한번 불사조를 향하더니―― “……폐하, 폐하.” 조바심 가득한 목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에테르가 흐르는 쪽으로 시선이 따라간다. ――그곳에 과거와 같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짝거림은 없다. 물로 희석된 것 같은 흐릿한 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괜한 걸 봤다는 듯, 눈썹을 찌푸린다. 이 상황…… 아무래도, 의자에 앉은 채로 살짝 졸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이제 알현에 응하실 시간입니다.” 겨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긴 금발 머리를 묶은 키 큰 청년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있다. 미간의 깊은 주름 때문에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채 20살이 되지 않은 자신의――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솔 조스 갈부스의 손자, 바리스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 며칠 전에 있었던 폭동 진압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사실 개별적으로, 게다가 사적인 공간까지 찾아와서 보고를 할 만큼 큰 사건도 아니었을 터다. 그럼에도 바리스가 찾아온 건, 나름대로 무공을 자랑하려는 기개를 보인 것인가, 아니면 배후에 있는 지지자들에게 선동을 당해서인가…… 유심히 생각해본다. 어느 쪽이든, 하찮기 그지없는, 불완전한 것들의 어리석은 행위다. 솔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고 걷기 시작한다. 바리스 옆을 지나치자 그가 문득 말을 건다. “……저의 무엇이, 그렇게나 마음에 안 드십니까.” 멈추고 살짝 뒤돌아보니, 손자는 드물게도 그 나이에 걸맞는……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부의 그간의 태도에, 그도 불만이 없지는 않았을 테다. 솔은 잠시 생각하다, 금세 생각난 듯이 중얼거렸다. “그 덩치다.” “……네?” 당황한 바리스가 무심결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생각이 없는 솔은 이번에야말로 멈추지 않고 자신의 방을 나왔다. 알현실을 향해 복도를 걷다 보니 무의식 중에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갈레안족은 혈통에 따라 상당히 체격차이가 있지만, 솔의 육체는 유별나게 몸집이 큰 편은 아니다. 부인이었던 여자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은, 갈레안족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만큼 크고 강인한 체격이었다. 주변에서는 극구 칭송했지만 솔만은 내심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어차피 결국은 불완전한 존재. 진정한 동포들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 짧은 생에 집착하고 그것을 위해서 계속해서 과오를 저지르는 어리석은 파편……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을 때 자신은 과연 무엇을 ‘바라고’ 말았는가―― 결국, 그가 무언가를 “바라고” 말았던 장남은, 시답잖은 병에 걸려 명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그 혈통을 이어 체구까지 꼭 닮은 자가 눈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당시의 작은 실수를 끊임없이 기억나게 한다. 아아 정말이지――진절머리가 난다. 남자는 문 앞에서 서서 순간, 눈을 감는다. 귀찮은 일을 모두 내던져 버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