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바로가기 게임시작

파이널판타지14 못다 한 이야기

칠흑의 반역자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미처 말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야기들을 공개합니다!

제8재해 서사록

나는 기록한다. 인간이 ‘제8재해’라 부른 이 시간을, 기록한다. 시드 갈론드의 증언을 요약하자면 그가 접한 사태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갈레말 제국의 식민지였던 도마와 알라미고가 당대 총독을 쓰러뜨리고 다시 독립을 이루었다. 그것을 계기로 다른 식민지에서도 해방운동이 활발해졌고, 그들을 지지하는 에오르제아 동맹 및 동방 연합과 갈레말 제국은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다. 제국군이 알라미고와의 국경지대인 김리트로 진군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군도 집결했다. 평화협상의 자리가 마련되지만 결렬로 끝나 결국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만다. 초반에는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운 제국군이 우세를 보였으나 전투가 장기화되자 동맹군의 반격 공세에 힘이 실렸다. 훗날 시드는 이를 두고, 대부분의 병사를 식민지에서 징집하고 있던 제국군과는 달리 조국을 위해 참전한 동맹군의 ‘의지’에서 차이가 났었다고 회상했지만 그 작용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따라서 다른 명확한 요인을 든다면 ‘새벽의 혈맹’이 동맹군에 가세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이 오면서 전략과 전술이 향상되었고 승리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전투 기록을 보면 분석 가능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날. 시드와 갈론드 아이언윅스의 핵심 인물들은 동주 오사드 소대륙의 일각, 영구 초토지대라 불리는 장소에 모여 있었다. 앞으로 있을 제국군의 침공에 대비해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청룡벽이라는 이름의 방어 필드를 강화해 달라는 의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 끝에 데리고 돌아온 네로 스카이와도 때 맞춰 합세해 현지에서 한창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그때, ‘사태’가 발생했다. 처음에 받은 보고는 간결한 내용이었다고 시드는 말한다. “에오르제아 쪽 전장에서 터무니없는 병기가 사용됐다고 하는군. 랄거의 손길에 있는 지사하고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 ――보고 받은 내용대로다. 모순된 점은 없었다. 그 시점에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였으니 당연하다. 전장에서 사용된 건 ‘검은 장미’라 불리는 제국에서 만든 병기였다. 생명체가 갖고 있는 에테르의 순환을 강제로 정지시켜 몇 번의 호흡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기. 파급 범위는 실로 광대했는데, 특히 투하지점과 가까웠던 알라미고 지역은 생존자가 있는 마을이 더 적을 정도였다. 근방의 검은장막 숲과 다날란은 물론, 제국 영토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이것들은 모두――나의 몸체에는 아이센서와 녹음 마이크 이외의 기능은 탑재되어 있지 않기에―― 훗날 수집하고 저장한 사실들이다. 그 시각에 난 오고모로 산 중턱에 머무르고 있어 무기가 사용되었던 현장에는 없었다. 다만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던 노란 깃털로 뒤덮인 동행자가, 무언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들었던 일은 기록한 바 있다. 나는 기록한다. 인간이 ‘제8재해’라 부른 이 시간을, 기록한다. 언어 발화 기능이 없어 장난감으로만 인식되고 있었을 내게, 다시 만난 시드와 동료들은 이상하리만큼 자주 말을 걸어 왔다. 이후 그들의 발언이, 기록이 내게 축적되고 있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각 데이터 항목을 참조할 것을 권장하지만 개요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검은 장미가 초래한 것은 다수의 사망자뿐만이 아니었다. 환경의 변화다. 정체의 힘을 띠는 그 병기로 인해 수많은 지맥이 흐름을 멈췄다. 에테르 공급이 끊긴 토지는 황폐해져 인간이 살기 어려운 장소로 변모했다. 이윽고 주변 지역에서도 에테르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때로는 그 불균형이 생물의 성질도 변화시켰다. 그동안 주식으로 먹어 왔던 농작물이 하루아침에 독성을 띠게 된 사례도 있었다. 그로 인해 사망자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 재해 이전과 같은 생활을 계속 영위하는 일은 불가능해졌고 인간이 가진 사회성이라는 힘을 증폭시켰던 ‘국가’라는 조직 형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변화는 에오르제아뿐 아니라 갈레말 제국 영토까지 점차 확대되었다. 그들의 생활과 군사력을 뒷받침하고 있던 마도 기술은 청린수가 격하게 연소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기반이 된다. 그러나 검은 장미에 물들어 버린 세계에서, 청린수는 그 특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고 제대로 가동시킬 수 없어진 기존의 청린기관은 그저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죽음과 변화에 직면한 생물들은 무엇을 시작했는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은 적극적으로 전투를 했다. 거주할 수 있는 땅을 둘러싸고.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둘러싸고. 더 이상 규제 당하지 않는 욕심으로 인해. 복수라는 명목 하에. 가장 많은 동족을 죽인 것도 인간이었다. 시드와 동료들은 이 상황을 놓고 ‘진흙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실제로 진흙으로 뒤덮인 땅이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진흙이라 불리는 물질은 그 점성과 깊이, 시야의 불투명함 때문에 해결하기 힘든 사태를 나타내는 비유로 쓰인다. 기록 데이터 열람 시 착오가 없게 해두고 싶다. 그렇게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인간은 문화와 사회성이라는 특유의 힘을 잃고 좀 더 원시적인 짐승의 모습에 가까워졌다고 나는 인식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개체는 남아 있었다. 갈론드 아이언웍스의 생존자들도 그 예이다. 그들은 점차 확대되어 가는 전투의 불씨를 막기 위해, 착취 당하는 자를 보호하고 착취하는 자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 때로는 뜻을 함께 하려는 자들도 나왔지만―― 그보다 더 자주 동료들을 잃었다. 어떤 라라펠족 기술자는 난민 마을에 우물을 만들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노상강도에게 습격을 당해 치명상을 입었다. 동료들이 아무리 손을 써도 쇠약해져만 갔다. 그와 늘 행동을 함께 하던 덩치 큰 기술자는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격려의 말을 건네며 손을 잡자, 간신히 의식이 돌아온 그는 동료를 보고 반드시 살아남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손을 남겨 그 생명을 이어가 달라고도. 그 말을 들은 자는 “너야말로”라고 손을 잡은 채 대답했다.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희미하게 웃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전 아직, 타타루 씨뿐임다.” 나의 동행자도 그에게 볼을 갖다 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이 마를 무렵. 시드와 동료들은 한층 더 여윈 얼굴로 거점에 있는 한 회의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논의를 계속했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이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몇 가지 효과적인 선택지를 미래에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자신들을 비롯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동료들을 저버리는 행동이 되진 않을지 우려하는 의견도 나왔다.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무의미해지진 않지.” 이로써 그들의 행동 지침이 결정되었다.
나는 기록한다. 인간이 ‘제8재해’라 부른 이 시간을, 지금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갈론드 아이언웍스가 추구했던 것은 검은 장미의 효과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제8재해가 되어 버린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회피하는 방법―― 즉 과거를 바꾸어 ‘재해가 일어나지 않은’ 역사를 성립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이 확립 가능한 이론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찬성하기 힘든 행동이었다는 건 나라도 이해할 수 있다. 짐승이 중요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그리고 예상 가능한 아주 가까운 미래의 안정이다. 시드와 동료들의 행동은 그들에게는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실제로 반대하는 자가 나타났다. 협력을 거부하는 자도 있었다. ‘다 필요 없고 물자를 내놔’라며 공격해오는 자도 있었다. 그런 자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자도 분명, 존재했다. 제8재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마법과 에테르학에 정통한 식자들이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재해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 영웅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럼 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처럼 세계가 비참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주변 식자들은――아무래도 다들 그 인물과 면식이 있는 듯했다―― 찬동의 뜻을 드러냈다. 그 가설에 어떤 상승 작용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그들의 지적 향상심 덕에 해낼 수 있었던 일이었는지 판단은 불가능하지만, 훗날 그들은 재해의 구조와 제8재해의 진실을 규명해냈다. 또한 ‘제8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역사를 성립시키자’는 목적이 ‘그 영웅이 죽지 않게 하자’는 말로 바뀌자 더 많은 찬동자가 나타났다. 물자 부족이 만성적인 문제가 되고 있을 무렵, 식량을 가져다 준 자가 있었다. 자신이 도와줄 일은 없느냐며 찾아온 장인도 있었다. 그들 또한 그 영웅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나마즈오라 불리는 종족의 협력자는 역사를 바꾸는 것에 깊은 이해를 드러냈다. “큰메기님은 이런 미래가 될 거라고 말하지 않았담메. 그러니까 자기가 본 건 제8재해가 일어나지 않은 역사의 미래였다고, 광풍원 세이게츠가 말했었담메!” ――이 발언의 의미는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일단 그대로 기록해 두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도 협력자는 나타났다. 어떤 날엔 연구 기자재를 옮기던 중에 도적을 만난 동료를, 거대한 비공정이 나타나 구해주었다. 그 비공정을 조종하는, 자칭 ‘하늘도적’이라는 여성은 금발을 쓸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과거에 그 영웅님이란 사람한테 도움을 받았다고 했어. 명색이 2대 하늘의 여왕인데, 내가 그 빚을 갚아줘야 하지 않겠어?” 조사와 실험을 위해 벽지로 파견 나갔던 자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보고를 했다. 홍해를 이동하던 그는 선상에서 습격을 당해 바다를 표류하다 근방의 섬으로 흘러 들어 갔는데, 몽롱한 의식 속에서 커다란 동물 같은 것―― 거북 또는 뱀으로 보였다고 한다――이 자신을 돌봐주는 느낌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마찬가지로 솜 알을 오르던 중에 사고를 당한 자가 흰 날개를 가진 거대한 존재의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다. 틀림없이 드래곤족이었을 거라고 당사자는 말했지만, 그들은 인간이 일으키는 전란이 싫어서 그 지역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이 사례들과 그 영웅을 직접 결부시킬 수는 없지만,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그자의 활동 기록이 남아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관련을 지으며 사기충천하는 자도 있는 듯했다. ――그 모든 일을 거쳐 지금. 노령이 된 시드의 주름투성이 손이 그들이 추구한 이론의 마지막 한 줄을 기록했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 옆에 서 있는 네로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시드만큼 나이가 든 네로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그에게서 늘 관측되던, 어깨를 으쓱하는 몸짓을 해 보였다. “……뭐, 나쁘지 않군?” 긍정치고는 모호하다. 하지만 시드는 눈을 감고 다시 깊은 숨을 내쉬면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뒤쪽에 있던 주전자를 움직여 금속 머그컵 두 잔에 커피를 따랐다. 그 한 잔을 네로에게 건네고는 가볍게 위로 들어올렸다――건배라고 하는 동작이다.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홀짝였는데, 오늘 네로가 ‘맛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겠다. 조금 뒤 시드가 자신들이 기록해 온 종이 뭉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실현……될 거라고 보나?” “글쎄. 이론은 확실해도 막상 시도해보니 완전히 다르더라는 이야기는 흔히 있잖아. 그런 경우까지 포함해서 이제…… 젊은 녀석들 손에 달린 셈이야.” “그래.” 이후 말이 없다. 그 침묵 속에 존재하는, 인간만이 관측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나는 기록할 수 없다. 다만 시드가 던진 질문에 대해서 인간이 할 법한 대답은 도출해낼 수 있다. 마치 ‘그때’처럼……. 그들이 만들어낸 이론의 핵심은 크리스탈 타워, 기공성, 그리고 차원의 틈과 관련된 모험에서 얻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모험의 결말은 단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은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잃은 동료들에게도, 이와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잘 자라. 그리고 나는 인간이 그 다음에 나누는 말을 알고 있다. 조용히 잠이 들었다가, 이윽고 해가 떴을 때 하는 말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아무리 먼 미래라 해도 그곳에 이르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