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바로가기

창천의 이슈가르드

못다 한 이야기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뜻밖의 만남, 그리고 스토리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은 특별한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마지막 창천기사'

창천기사단 총장, ‘반드로 드 르슈망드’는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65세의 노장은 육신이 노쇠해지며 기사 생활에 한계를 느낀 지 오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은 이런 사소한 것이 아니다. 교황을 수호하는 창천기사가 된 지 40년이나 흐른 지금, 수호해야 할 대상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때는 한 달 전. 반드로가 교황청 안뜰로 이어지는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을 때의 일이다. 교황 토르당 7세는 여느 때처럼 혼자 묵상하러 안뜰에 들어섰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일상......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잠시 후, 희미한 대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혼잣말이나 기도 소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교황이 아닌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라면 교황을 지키기 위해 당장 뛰쳐들어가야 하겠지만 착각이라면 귀까지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고민 끝에 반드로는 숨을 죽이고 안뜰로 들어가 몰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검은 옷을 입은 수상한 자와 토르당 7세의 밀회 현장...... 일등 이단심문관 샤리베르 뢰지냑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샤리베르는 자신의 직무를 천직이라 여기고 있으나 요즘 그의 욕구를 채워줄 만한 ‘사냥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 하필 무능한 부하가 얼굴을 디밀었으니 짜증이 솟구쳐 오를 법도 하다. 긴장한 탓에 하나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금발 머리카락이 떨리고 있는 신입 부하...... 한 통의 편지를 전해주러 온 모양이다. “이게 뭐야......?” 밀랍으로 봉해진 편지는 보내는 자의 정보도 없고 인장도 찍혀 있지 않았다. 누가 보낸 편지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 글쎄요....... 오늘 아침, 검은 로브를 두른 사내에게 받았습니다.......” 누가 보낸 편지인지조차 묻지 않은 무능한 부하는 나중에 엄벌을 내리기로 하고, 샤리베르는 손끝에 마력을 집중해 ‘불’을 켜고는 그 열로 밀랍을 녹이기 시작했다. 눌은 자국 하나 없이 정교하게 밀랍만 녹여낸 편지는 그가 뛰어난 화염마도사(파이로맨서)라는 걸 나타내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는 부하의 눈에는 그저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편지를 꺼내 빠르게 훑어 내려가던 샤리베르는 자신의 뺨이 미소로 실룩거리게 됨을 느끼며 역시 이단심문관이 본인의 천직임을 실감했다.

한밤중, 교황청 최상층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반드로는 창천기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성도 이슈가르드를 정치와 종교 양면에서 이끌며 교황을 지키는 자들. 건국의 아버지 토르당과 함께 사룡 니드호그와 싸웠던 열두 기사를 본보기로 삼아 선발한 열두 명의 기사들이 모인 성도의 최정예 멤버. 전쟁신의 대방패를 대신해 교황을 지키며 전쟁신의 수많은 창을 대신해 적을 쓰러뜨리는 자들이 바로 창천기사이다. 허나, 지켜야 할 교황이 하필이면 혼돈의 사자 ‘아씨엔’과 내통하고 있었다. 게다가 야만신의 소환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전쟁신 할로네를 소환하려는 것도 아니다. 전혀 다른 ‘무언가’를 소환하려 하고 있다. 전쟁신을 지고한 수호신으로 섬기는 이슈가르드 정교의 가르침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행위다. 반드로는 고뇌 끝에 결의했다. 교황에게 직접 진의를 묻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서는 이단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자신의 검으로....... 반드로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밤의 고요함으로 가득 찬 교황청의 최심부, 교황 토르당 7세의 거주 구획으로 이어지는 문 앞에서, 야간 경비를 서는 부하 에르메노에게 말을 건다. “교황 성하께 급히 전해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네.” “이런 한밤중에요? 대체 무슨.......” 의심의 눈초리로 묻는 에르메노의 질문에 손을 저으며 대답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고, 반드로는 다른 사람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교황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창천기사단 총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용히 문을 닫은 반드로는 순간적으로 한숨을 쉰다. 하지만 잠시 복도를 걸어가자 사람 형체가 보였다. “설마……!?” 목구멍까지 차오른 ‘아씨엔’이라는 말을 간신히 집어삼킨 반드로는 언제라도 검을 뽑아들 수 있게 검 손잡이에 손을 댄 채 로브를 두른 사내와 대치하였다. “이렇게 늦은 밤에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어딜 가시려는 건가요?” 깊숙이 뒤집어썼던 후드를 벗은 남자의 얼굴은 음흉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머리카락을 꽉 동여맨 그 남자가 누구인지, 잠시 생각한 후에 이해한 반드로가 되묻는다. “귀공이야말로 무슨 일이신가....... 여기는 이단심문관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네!” 남자가 아씨엔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반드로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가 악평이 자자한 이단심문관 샤리베르라는 걸 알아챈 그는 상황에 따라서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두 동강을 낼 생각이었다. “어머나, 저 같은 놈을 아실 줄이야....... 영광스럽기 그지없군요.......”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샤리베르의 말투에 반드로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이래 봬도 일하는 중이랍니다....... 이단심문국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오늘 밤 이곳에 이단자가 나타난다고 해서, 이렇게 잠복하고 있었지요.” 그 대답에 반드로의 표정은 한층 더 일그러졌다. “설마, 교황 성하께서 나를.......”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예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거주 구획에 샤리베르가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결론을 나타냈다. 오랫동안 봉사한 자신을 배제하기 위해서, 교황이 직접 이 천박한 남자를 자객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놀라움과 슬픔이 반드로를 덮쳤지만, 그래도 그는 뛰어난 기사다. 다음 순간 들이닥친 화염 마법의 열을 피하기 위해 그는 재빨리 몸을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낙법으로 일어선 뒤 방패를 들고 돌진했다. 대적하는 샤리베르도 일류 마법사다. 상대가 기습적인 첫 공격을 회피하자, 혀를 차면서도 노기사의 돌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를 들어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받아랏!” 샤리베르가 내민 지팡이 끝에서 강렬한 불덩이가 내뿜어져, 노기사의 방패와 격돌했다. 노련한 기사인 반드로는 막아낸 열량의 무시무시함을 실감하고는, 순식간에 녹아 내리기 시작한 방패를 집어 던지고 검을 휘둘렀다. “쳇...... 늙었어도, 창천기사는 창천기사란 말인가......” 샤리베르는 날쌔게 뒤로 물러섰지만, 사선으로 베인 오른뺨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얕보지 마라, 애송아! 싸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지도 모르겠다만, 적당히 해서 이 반드로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으냐!” 분명 샤리베르는 적당히 하고 있었다. 바닥과 벽에 그을린 자국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늙은이를 태우기 위해서. 그 오만함이 실패를 불렀는지, 일련의 공방으로 샤리베르는 어느새 벽까지 몰렸다. 이제 거리를 두고 마법전을 벌일 수 없다. 허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였으면서도 샤리베르는 희열에 가득 찬 미소를 띠웠다. “오랜만에 즐겁군요...... 경의를 표할 만해요......”

다음 날 아침. 교황 토르당 7세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혼자서 거주 구획에서 나왔다. 불침번을 섰던 에르메노와 마중을 나온 부단장 벨긴에게 교황은 조용히 말했다. “어젯밤에 반드로 경이 내 방을 방문해서 은퇴하겠다고 했네.” “네!? 정말입니까?” 놀라는 벨긴에게 교황은 끄덕였다. “기사를 하기엔 고령이다 보니, 요즘 한계를 느끼고 고민했던 모양일세. 어제는 밤새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네...... 지금 대기실에서 선잠을 자고 있으니 잠시 내버려두게. 그에게도 휴식이 필요할 테니......” 창천기사로서의 임무에 누구보다도 열의를 품었던 총장이 고심 끝에 은퇴하기로 결단한 것을 생각하니, 벨긴도 에르메노도 북받쳐 올랐다. 그리고 존경하는 총장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아침 기도를 하러 가는 교황을 따라 그 자리를 떠났다. 훗날, 교황청에서 창천기사단 총장 반드로 드 르슈망드 경의 은퇴와 제피랭 드 발르르당 경의 총장 취임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새 총장의 취임식에 반드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황 토르당 7세는 이 건에 대해 반드로 본인의 뜻을 수렴해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리하여 성도에서 마지막 창천기사가 사라진 것이다. 교황의 거주 구획에 있는 차가운 돌바닥에 거무스름한 탄 자국을 남긴 채. 창천의 이슈가르드, 못다 한 이야기 6화로 이어집니다.